매일신문

야고부-蔣介石 張學良, 韓國 中國

'싸움은 말리고 불은 끄라'고 했다. 중국이 탈북난민 7명을 강제북송한 후 우리국민들의 대중국 감정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여차하면 다시 92년, 수교이전의 호칭인 '중공'으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간 자유총연맹 등이 서울 명동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의 대중국정부 항의, 미국 LA 등지 동포들의 범교민적인 탈북자 대책 마련 등을 감안하면 일단 반분은 풀리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우다웨이(武大偉) 주한대사의 외교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듯한 언동에 대한 대사 소환운동이 민간단체에 의해 있어왔고 언론을 통한 비판도 있어 왔다. 원래 외교란 다종다양한 방법을 구사,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방편이다. 2천600여년전의 중국 춘추시대에는 외교사절들이 만나서 국가의 현안을 논의하기 전, 서로 시로써 선문답(?)하는 형식도 취했었다. 외교통상부가 최근 탈북자 북송문제로 흐트러진 한중관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중국측에 차관보급 회담을 제의한 사실이 눈에 띈다. 우리의 차관보와 중국의 외교부 부장조리(部長助理)가 언제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보다 견고한 양국관계의 구축을 위해 양국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루자는 배경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 아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936년, 중국 동북군의 사령관이었던 장쉐량(張學良)이 장제스(蔣介石)를 연금했던 서안사변(西安事變)이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패퇴하고도 삼십수년이 지난 80년대 중반, 그때까지도 타이베이(臺北)근교의 한 별장에 연금돼 있던 장쉐량은 마침내 결심을 했다. 총통부의 장제스에게 그가 수십년 소지했던 회중시계를 선물한 것. 며칠후 총통부에선 낚싯대 하나가 답례로 돌아왔다. "이만큼 가둬놨으니 이젠 풀어줄 때가 됐지 않았느냐"는 장쉐량의 요구에 "아직은 아니니 낚싯대로 세월이나 낚으라"는 장제스의 답이었다. 중국인의 은유적인 표현법, 배울만하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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