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사관의 붓

전(全)형, 지난 연말 뉴욕에서 보내온 연하장이 벌써 빛이 바랜듯 느껴지는 것은 바뀐 천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일까요.

지난 한해는 새 천년을 앞두고 온통 예측하고, 분석하고, 제시하고, 설정하기에 바빴으나 막상 새 천년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오히려 차분해졌어요. 출발선을 떠난 주자가 전력질주해야 하는데도 이렇듯 냉정해지는 것은 너무 많은 변화만을 추구한 뒤에 오는 공허감 때문이 아닐까요.

전형, 사실 우리는 요근래 너무 많은 변화를 경험했지요. IMF가 할퀴고 간 상처가 너무나 혹독했던지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유행병처럼 번졌어요. 뜻조차 파악하기 힘든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더니 어느 날은 '신지식인'이 돼야 한다고 매스컴이 떠들어 댔지요.

##새 천년 너무 많은 변화 경험

그러더니 경제를 바꾼다고 벤처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벤처 기세는 대단했지요.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일부 주식 가격이 몇 달만에 수십배씩 뛰기도 했어요. 땀흘려 일하는 건강한 근로자가 '이재에 어두운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벤처 주식이 돈벌이의 화두(話頭)가 됐지요. 그러다가 이제는 '20대 80 사회'라는 용어가 생겨났어요. 저소득층이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상위그룹 20%가 사회 전체 부(富)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슬픈 얘기지요. 최근에는 시민단체가 국회의원 공천예정자를 심판하는 '혁명'에 가까운 시민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어요.

전형,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직, 정의, 양보, 겸손, 웃음 같은 것들은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길래 요즘은 지도층에서도 거짓말을 서슴지 않아요. 변화를 추구하다 더 큰 것을 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지요. 최근 또다시 붕괴된 대구지하철 공사현장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직, 정의는 변할 수 없는것

전형, 문득 다음과 같은 고사가 생각납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대부 최저가 난을 일으키고 제장공(齊莊公)을 무참히 살해했다. 어린 공자를 군위에 올려 놓고 권력을 장악한 후 태사 백(伯)에게 "실록에다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쓰라"고 했다. 그러나 백은 명령을 거역하고 "최저는 그 임금을 죽였다"고 썼다.

그 기록을 본 최저는 대노하여 태사 백을 죽였다. 그런데 태사 백에게는 중(仲), 숙(叔), 계(季) 등 3명의 동생이 있었다. 다음 동생 중도 형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중을 죽였다. 다음 동생 숙도 그렇게 썼다. 최저는 숙까지 죽였다.

그러나 마지막 동생 계도 죽은 형들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 기가 막힌 최저가 계에게 "시키는 대로 쓰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계는 "사실을 바른대로 쓰는 것이 나의 직분입니다. 자기직분을 잃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 내가 쓰지 않더라도 반드시 천하에 이 사실을 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최저는 계를 죽이지 못했다. 최저는 죽을때까지 정대한 필봉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형, 연하장 마지막에 쓴 '바른말을 함에 서슴지 말아달라'는 충고가 왠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요. 언제 다시 귀국하거든 중동교 부근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그 부끄러움을 사죄하리다.

윤주태(사회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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