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세계를 떠나 극락에 계시지만 스님께서 남기신 업적은 우리 겨레와 함께 청사에 길이 빛날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 1919년 해인사를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불교계 인사로 열렬한 독립운동을 펼친 한 스님의 업적이 최근 발굴, 행적비 제막식이 거행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9일 오전 11시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는 독립운동가 포월당 김봉률 스님의 행적비 제막식이 김건신 대구지방보훈청장, 박팔용 김천시장 및 유족,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1897년 합천에서 태어난 김봉률 스님은 해인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동료 30여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양산, 통도사, 동래, 부산, 범어사, 김해, 경주지역에 배포하는 등 경상남북도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3월31일에는 해인사 홍화문에서 200여명을 결집시켜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일본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자 동료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 당시 봉천성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스님은 또 그후 국내에 들어와 경상남북도 및 충청북도의 각 사찰을 돌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던 중 문경 김용사에서 친일 주지의 배반으로 일경에 체포돼 2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건신 대구지방보훈청장은 추모사를 통해 "스님의 공적이 해방 정국의 혼란과 친일파의 준동으로 지금까지 묻혀왔으나 유족들의 노력으로 반세기만에야 밝혀진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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