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주만큼 잘난 조상에 못난 후손을 실감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역사의 냄새'를 깡그리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천년 고도(古都)가 100년 자취는 커녕 10년 자취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경주에 어째서 아파트가 있는가. 신라사람들이 아파트에 살았는가. 그것도 15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경주에 웬 자동차가 그리 많은가. 신라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가. 경주에 왜그리도 시멘트길이 많고 아스팔트 포장이 많은가. 신라사람들이 시멘트길을 다녔는가, 아스팔트 포장으로 달렸는가. 경주에 왜그리도 전신주가 많은가. 신라사람들이 전기불을 켜고 살았는가. 경주의 가로등이 이제 막 생긴 신도시 가로등과 어째서 꼭 같은가. 천년 전에도 신도시 가로등이 거리에 있었는가. 문무대왕의 해중릉(海中陵) 가는 길엔 웬 횟집들이 그리도 많은가. 흡사 동남아 어디 빈한하고 비위생적이기 한량없는 어느 선창가를 거니는 것만 같다.
호텔들은 왜 그리도 뉴욕의 호텔이며 파리.런던의 호텔 그대로인가. 경주 맛이 나는 호텔,반월성과도 같고 계림과도 같은 호텔들을 설계할 수 없었을까. 아니 그런 의식이라도 가져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호텔에서 흘려보내는 음악의 어느 한 소절에라도 '천년 경주'를 떠올리는 가락을 담을 수는 없었을까. 어찌 그리도 왼종일 서양음악만 틀어대는가. 이태리에 와있는 것도 아니고 빈에 와 앉아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서양관광객은 눈을 닦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어째서 그들 음악만 귀에 차도록 듣게 하는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유적지 중 경주만큼 비유적지가 되어 있는 유적지가 있을까. 경주만큼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돌려보내지 않는 과거 없는 과거의 도시가 있을까. 경주만큼 역사의 때를 비누로, 퐁퐁으로 말끔히 씻어버린 역사없는 역사의 도시가 있을까. 경주만큼 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을 파괴할대로 파괴한 문화 정체성 없는 문화의 도시가 있을까. 경주만큼 가장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장 빈약한 문화유산으로 만들고 있는 도시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을까.
경주에 셔틀버스만 다니게 할 수 없을까. 경주에 흔히 다른 유적지에서 보는 관광용 기차를 타며 유적지를 돌아보게 할 수 없을까. 경주에 오직 마차만 다니게 하면 어떨까. 경주에 아파트를 모두 철거하고 옛날식 한옥만 짓게 할 수 없을까. 나라의 재정을 모두 기울여(설사 IMF 구제금융을 한번 더 받는 일이 있어도) 경주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누고, 가능한 지금 경주에 사는 사람들을 신시가지로 옮겨 살게 하고 구시가지는 예처럼 즐비한 한옥과 박물관만 들어서게 하면 되지 않을까.
경주는 파면 모두 유물이라고 했다. 포클레인 한 삽에 헤일 수 없는 유물들이 파여나온다고 한다. 천마총 한 고분에서 나온 유물만도 4만5천점이라고 한다. 이 유물들을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 놓으면 아마도 박물관 수는 수백개, 아니 수천개가 될지도 모른다. 황룡사도 복원하고 분황사도 복원하면 또 어떨까.
멕시코를 한번 가보라. 잉카문명.아즈테크 문명의 유적지라 하지만 그 유적지의 피라미드는 사실은 돌무더기에 불과하다. 그 돌무더기로 멕시코가 1년 관광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 60억달러가 넘고 100억달러를 계획하고 있다. 경주는 어떤가. 그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유물들을 가지고도 아이디어가 없다. 정말 안타까운 후손들이다.
그래도 60년대는 이보다 나았던 것 같다. '잔 띄우던 구비물에 떨어지는 복사꽃잎/옥적소리 끊인 골에 흐느끼는 저 풀피리'조지훈(趙芝薰)님의 '계림애창'의 한 구절이다. 지금 경주의 그 어디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으랴. 지금 경주의 그 어디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랴. 하늘엔 반월(半月)이 떴지만 예처럼 숨을 곳이 없다, 경주엔.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