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시민단체는 더 넓은 시야를

16대 총선거는 혼란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와 동떨어진 여야선거법 협상의 혼미와 지지부진, 선거구도 획정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각 당의 공천작업, 선거법을 무시한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 등은 선거를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원죄야 자기개혁을 거부하는 정치권의 구태에서 비롯되고 있다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시민단체의 공격적 선거참여방식이 유권자의 의식에 갈등과 혼돈의 요소로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공천반대자 명단발표는 정치권에만 충격을 준게 아니고 지금까지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던지는 상황이다.

◈혼란속의 선거운동

총선시민연대, 경실련, 정개련 등 각종 시민단체에서 내놓은 공천반대명단을 보면 우선 정치를 오래해온 낯익은 얼굴들로 정권이 여러번 바뀌고 세상이 여러번 바뀌어도 끄떡없이 금배지를 지켜오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된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특히 3공화국시절부터 끈질기게 살아남은 오뚝이정치인들, 그들중 아직도 정권의 한 축을 이루고 한국정치판을 장악해온 3김중 한사람인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가 포함된 것은 정치판의 지진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다수가 정경유착이다, 비리다, 뇌물이다하면 자주 신문이나 TV에서 얼굴이나 이름을 대하던 정치인들이다. 이같은 명단발표가 없더라도 이제 그만큼 했으면 그만둬도 될 것같은 인물도 많다. 아니 지금까지 해온 것만해도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향사람들 욕먹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정치인도 숱하다. 원로정치인이라지만 노추정치인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언론기관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유권자들이 이들의 낙천운동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만둬도 될 정치인

그런 지지속에서도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위법성 시비나 공정성 시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같다. 시민단체의 초법적 낙천·낙선운동이나 사전선거운동이 법질서가 무너지는 선거혼란의 원인제공을 하게된다면 정치권만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설사 현행법이 잘못된데서 빚어진 불복종운동이라해도 선거의 공명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불복종운동에대한 대통령의 용인과 검찰의 단속이란 두 얼굴은 선거관리의 공정성 시비를 배태하고 있고 이미 제기된 음모론도 이 때문에 일부에서 먹혀들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시민단체들이 목표로 표방하는 부패무능한 정치인이나 헌정질서를 파괴했던 정치인, 지역감정을 부추긴 정치인, 저질행동을 해온 정치인이 이번 선거에서 모두 청산되기만 한다면 성공적이라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낙천운동명단을 보면 일부 인물들에 대한 사실판단의 공정성 시비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 청산의 기준에서도 근본적 문제가 잠복해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사실 우리 정치의 근본문제는 부패부정의 고질적 병폐 외에 일제(日帝)와 독재잔재의 청산, 지역감정의 청산, 남북대치속의 보혁(保革)갈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일제와 독재잔재의 청산은 이들 문제 가운데서도 핵심문제다. 낙천명단 가운데 3·4·5공(共)의 핵심과 협력인물이 다수 포함된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협력정치인을 어디까지 포함시켜야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번에도 JP가 명단에 포함되자 일부에서 공동정부를 만든 김대중 대통령의 연루책임이 거론된 것은 그같은 이유 때문이다.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선 3·4·5공 당시 여권의 고위관리와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낮에는 야당·밤에는 여당했던 야당정치인, 그리고 여권핵심으로부터 이른바 비밀 정치자금을 받았던 야당지도층은 독재잔재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청산 근본문제 잠복

일제(日帝) 잔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인물은 접어두고라도 매국노 이완용이 민족의 고혈로 형성한 재산을 그 자손이 차지하지 못하게 법제도를 고치는데 비협조적인 국회의원은 너무 수가 많아서 그냥 둬야하는가. 부패방지법 서명만 중요한게 아니다. 지역감정문제도 과연 이 시대에 어느 한쪽만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정권을 잡은 쪽은 쉽게 말하고 다른 쪽은 말하기를 꺼릴 뿐이라 보지않는가. 법질서 문제를 포함한 이러한 근본문제들에 시민단체는 시야를 더 넓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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