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보다 더 진한 이웃정

"고기도 마음껏 먹고 피아노도 배워요. 머리도 아줌마가 다듬어줘 엄마·아빠가 없어도 외롭지 않아요"

대구시 남구 봉덕동 주택가 한켠에 자리잡은 아동복지시설 '에덴원'. 이 곳에 사는 48명의 어린이들에게는 '엄마·아빠'가 많다.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엄마와 아빠 대신 인근 이웃들이 심어준 사랑이 가득차 있다.

에덴원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이 동네 주민들은 어림잡아 10여명. 식육식당 주인, 피아노학원 원장, 치과의사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틈날때마다 고아원 어린이들을 챙기고 있다.

고기집을 하는 배영호(40)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쇠고기며 돼지고기를 한아름 들고오고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통닭집 아줌마도 명절만 되면 통닭 10마리를 들고 에덴원 문을 연다.

벧엘피아노학원 원장 전희경(42·여)씨는 8년전부터 이곳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 왔다. 5년동안 원장 아주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영주(19·여·가명)는 이젠 실력이 쑥쑥 자라 이 학원의 '피아노 강사'역할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전문 미용사도 있다. 미용실을 경영하는 백영애(43)씨는 8년전 이 동네에 이사온 뒤부터 아이들의 머리를 책임져왔다. 장사가 잘돼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미용실. 하지만 빈털터리 꼬마손님들이 아무리 많이 찾아와도 배씨의 얼굴엔 싫은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봉덕시장 부근 '노세형치과'는 아이들의 치아 주치의. 수백만원이 드는 보철치료도 노원장은 찡그림없이 해준다.

"같은 동네 사는데 이 정도도 못해주면 말이 되나요. 우리 집에 있는 음식, 내가 가진 기술을 조금씩 품앗이하는 정도도 못해주면 이웃이 아니죠" 에덴원 이웃들은 자신들이 해온 일은 봉사도 아니라고 말한다.

10년전 고아원을 처음 지을때는 지레 겁을 먹고 건축사실조차 주민들에게 비밀로 붙였던 이 곳. 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울 것이라 생각했던 이웃의 시선은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저흰 아줌마·아저씨를 볼 때마다 정이란게 뭔지를 느낍니다. IMF가 닥치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아줌마·아저씨. 저희도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에덴원 아이들은 음력 새해아침 다짐을 이렇게 쓰고 있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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