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사는 새 세상-장묘문화 개선

묘지가 국토를 삼키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한해 동안 묘 설치로 최소한 20만여평의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 이 면적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전체 부지에 맞먹는 규모다. 매년 경북대학교 면적의 부지가 묘지로 소모되고 있는 셈이다.

전국적으로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 가량이 묘지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산림 파괴 상당수가 불법묘지 설치로 인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가용 국토 어디에도 묘를 쓸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현실에서 재계의 거물이었던 최종현 SK 전 회장은 지난 98년 유족들에게 '자신을 화장하는 것은 물론 값싸고 좋은 화장터를 지어 사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재력으로는 남 부러울 것 없던 기업인이 장묘문화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고 몸소 실천한 경우이다. 그의 유언대로 최 전 회장은 벽제화장터에서 이미 타계한 모친과 함께 화장, 수원 가족묘지에 묻혔다. 그룹측은 가족묘지터 인근을 가족납골당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파문끝에 지도층인사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장묘문화개혁 범국민 협의회'가 지난 98년 9월 창립됐다. 또 종교계·학계 등의 일부 지도층은 '화장 유언 남기기'서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화장보다는 매장을 선호하는 지도층의 보수적인 인식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국회의원, 행정부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고위공직자에게 화장유언 남기기 서약서를 발송했으나 서명한 서약서를 보내 온 사람은 1명 뿐이었다.

이에 반해 장묘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점차 변화되고 있다. 대구흥사단이 지난 해 6월 대구시민 500여명을 대상으로 장묘문화 개선을 위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본인 사망시 52.8%가 화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또 묘지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80%나 이르렀다. 화장유언 남기기 운동 동참여부에 대해서는 46.3%가 찬성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부모 사망시에는 화장을 하겠다는 응답은 22.7%에 그쳐 한계를 보여줬다.

그러나 장묘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너무나 많다.

묘지 관련 법령이 호화분묘를 제한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데다 화장문화 확산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대구시 행정에 관련된 온갖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대구시 인터넷 사이트에는 장묘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장묘 담당 공무원도 고작 1명 뿐이다.

경북도내에 위치한 11개 납골당가운데 행정당국에서 설치한 것은 3개 뿐이다. 게다가 시군에서 설치한 납골당은 이용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려는 배려가 부족해 일반인들이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장장 역시 경북도내에 10개소에 이르고 있으나 화장문화를 장려하기보다는 혐오시설로 낙인찍힐 법하게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화장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상당수 시민들이 매장방식을 선호하는 이유 가운데 화장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는 하나 그 일면에는 망자(亡者)에 대한 배려가 매장방식에 비해 뒤떨어지고 초라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화장장 시설이 이용자의 기대욕구에 따라 차등화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설치돼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납골당 시설 역시 부족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납골당 건립시 필요한 표준 설계도조차 없어 가족단위로 납골당을 설치하려는 개인들이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다. 또 화장이나 납골당 설치 등에 지원금 지급 등을 통해 장려하는 정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구지역에 '화장 유언 남기기'캠페인 전개를 하고 있는 대구흥사단 최현복 사무처장은 "장묘문화를 개선하기위해서는 각계각층의 욕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화장장·납골당 시설이 있어야 하며 또 정부 역시 장묘문화 개선을 꾀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할 때"라며 "무엇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