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손춘익(작가)

정치권이 혼탁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분장을 새로 하고 새 자리에서 엉뚱한 독설을 토해내는 꼴이 역겹기까지 하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니 내일 할 말은 또 무엇일까.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이 난다. 이렇듯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물론 정치권 혹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나라 살림을 맡은 살림꾼들이 염불보다는 젯밥에만 연연하다보니 서민들은 차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떡값이 폭로되고 또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수의를 입고 등장하는 사태가 발생되고도 연일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지각 있는 국민이라면 아마 그 수치와 절망감에 새삼스레 정치권 혹은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리라.

그런데 정작 원인제공자인 정치인이나 정치권은 전혀 책임의식이나 자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니 안타깝고 암담한 심정이다. 아마 이래서 한국에서 징치인으로 출세를 하려면, 식언과 허언을 다반사로 하는 철면피가 되어야 한다는 비아냥이 인구에 회자되는가 보다. 이렇듯 정치권이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위험수위에 오르게 된 것은 물론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승만 정권이 이끌던 제1공화국부터 소위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정치관행과 가치관의 실종이 급기야 파국 직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정치권이란 워낙 합종연횡으로 판이 짜여지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기 마련이라는 선입관이 은연중에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란 본디 그처럼 다양한 세력들의 이합집산과 야합에 의해 움직여지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정치판은 전시대적인 봉건체제의 구습에 지나지 않는다.권력이 소수의 지배세력에서 발생되던 시대의 권력쟁탈전에서 파생된 낡은 가치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풍조도 그 같은 정치판의 금과옥조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결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굳이 글로벌 운운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 발전해 갈지 상상을 초월케 한다.인간의 보편적 가치관마저 미증유의 빅뱅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식의 대혁명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현대인 혹은 지구인으로 설 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국가와 민족보다는 지구촌 세계인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기업인들은 이미 그 점을 체감하고 있는 듯하다. 지구촌을 상대로 한 왕성한 해외진출 현상이 그 한 예다. 아닌게 아니라 외국에 나가보면 의외로 발로 뛰는 한국인들이 많은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 혹은 정치인들은 아직도 붕당정치를 탈피하지 못하고 권력지향적이고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급급하다. 심각한 병폐다. 그 구태의연한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나라의 장래도 암담할 뿐이다. 나라가 제대로 발전해 가려면 정치권이 안정되고 정치인들이 건강해야 한다. 살림꾼이 부실하면 그 살림살이는 불문가지가 아닌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국운이나 국리민복도 정치적 역량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은 역사적 현실이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시대에는 정치인들도 거듭나야 한다. 먼저 기존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려버려야 한다. 진부한 관행에 쐐기를 박고 심기일전, 참신하고 역동적인 정치인상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롭고 올바른 가치관이 화두다. 정치인의 역할과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도 가치관의 문제다. 가령 민중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탈바꿈해 민중과 이웃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질을 갖춘다면 그는 이시대의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정치인에 속한다. 봉사하는 정치인은 정직하고 성실하다. 또 자유민주주의적 사고가 체질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코 봉사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그외에도 새 정치인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가지 덕목을 지녀야 한다.역사의식과 국제적 감각의 소유가 그것이다. 또 전문성도 간과 할 수가 없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지 않은가. 요컨대 세상이, 아니 지구촌이 돌아가는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러면서도 온건하고 평범한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 지금은 결코 초인을 꿈꾸는 봉건주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허장성세를 일삼는 권위주의적 정치지도자는 기피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새로운 사고,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인재를 찾아내자. 그런 인물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갑남을녀 속에 이웃해 있다. 그런데 그 선택은 다름아닌 유권자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그 점이 항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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