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事大外交部(?)

미국인들의 젊은 시절 꿈은 "영국 대사가 돼서 자주색 롤스로이스에 성조기를 달고 버킹엄궁을 출입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전통에 약한 미국인들이 노(老)대국에 대해 갖는 꿈과 향수가 진하게 묻어나는 구절이다. 뿐만 아니라 이 말속에는 '대사'(大使)란 외교관 직(職)에 대한 선망의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대사'란 관직은 참으로 지혜롭고도 당당해야 되는 '자리'란 생각이 든다. 외교 당사자끼리 금방 해결될 문제도 자국민의 체면을 생각해서 굴욕외교를 피하느라 대화가 깨지는 것도 비일비재 하다. 자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외교는 정상적인 외교가 아닌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이재춘(李在春) 주(駐)러시아대사 내정자가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힘센 나라다"고 발언한 것은 가뜩이나 강대국 외교에 허탈감을 느끼는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는 "탈북자 문제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 대화와 교섭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며 "과민 대응을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이 말들을 종합해보면 이 대사내정자가 우리 외교관인지 러시아나 중국 외교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해도 지나치지 않을듯 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약소국이라할 대만이나 이스라엘이 초강대국들을 상대로 당당히 벌이고 있는 강대국 외교를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대사내정자는 러·중 두나라가 '힘센 나라'이기 때문에 외교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에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뜻에서 조국이 자신을 대사로 임명하고 있음을 깨달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번 경우 뿐 아니라 근래들어 잇따르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굴욕외교 사례에 우려감을 금할 길 없다. 한·일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 문제, 탈북자 난민처리 문제와 과거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문제, 대미통상외교와 미사일 외교에서의 저자세 등등…. 얼마전 홍순영 전 외교부장관은 중국 외교부장과 목욕탕 외교란 저자세의 극치(?)를 보인 끝에 기껏 탈북자 북한 송환이란 치명타를 맞은게 고작이었다. 이번에는 러 대사내정자가 '힘센 나라'라고 치켜세우며 국민 전체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도대체 외교부는 사대부(事大部)란 말인가.

김찬석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