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위탁)아이들과 함께 친정과 시댁을 두루 다니며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어요. 부모님과 친척들은 (위탁아들이) 어떻게 해서 오게 됐는지, 그들의 부모는 계시는지,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지만 우리 부부가 있는 곳에 항상 (위탁)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가정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대리 부모'가 되어 5년째 따뜻한 가정을 제공하는 '해뜨는 집'의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국장.36), 김명희(장애인복지신문 대구지사 기자.40) 씨 부부.
'새천년 첫설날'을 맞은 이들의 소망은 단 한가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공하고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더라도 여건에 맞게끔 조금씩 조절하면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보살피는 가정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부부 가운데 '해뜨는 집'을 먼저 시작한 사람은 아내 김명희씨. 소외된 아이들과 살려는 고운 꿈을 지닌 김씨가 사글세 방 한칸(대구시 북구 대현동)을 얻어서 자발적인 위탁가정을 시작한게 95년 10월이었다.
김씨가 맡은 첫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생 영희(가명). '품행장애' 증상의 영희는 잘못을 저질러도 전혀 죄책감을 느낄 줄 몰랐고, 공부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들의 지갑에 손을 댔고, 거짓말도 능청스레 해댔다.
"여러가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영희는 속수무책이었어요. 붙들고 울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친부모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자란 영희는 사랑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러나 2년을 살고 나니 마구 물건을 내던지고, 고함지르고, 훔쳐가는 버릇이 차츰 줄어들고 표정도 편안하게 변했다. 이 마당에 친모가 데려갔다.
서서히 안정을 되찾던 영희는 "가기 싫다"는 말로 해뜨는 집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돌연히 나타난 친엄마는 막무가내였다. 친엄마를 따라간 뒤 영희는 학교에도 잘 안나가고 소식조차 끊어져 위탁모 김명희씨는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보육사로 근무했는데, 그곳을 그만두고 장애인복지신문의 일을 거들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련거렸다. 거기다가 IMF가 터지면서 헤어지는 가족, 멀쩡히 부모가 있으면서도 버림받는 자녀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서 어떻게라도 돌보고 싶었어요"
단칸셋방에서 해뜨는 집을 꾸리던 김씨는 좀더 넓은 두칸짜리 전셋집으로 옮겼고, 성폭행을 당한 중3생 복순(가명)양과 혜영(가명.초6) 준석(가명.초4)도 받아들였다.
"혜영이와 준석이 남매의 아버지가 한 3년만 아이들을 봐주면 살 밑천을 장만하겠다"고 부탁하는 바람에 다시 새식구로 받아들였다.
버림받은 이들에게 사회엄마의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중심을 잡으며 차분하게 해내는 명희씨를 지켜보던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국장이 청혼을 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천생배필 이들 부부의 혼례 들러리는 혜영이와 준석이가 섰다. 지난 11월, 해뜨는 집 가족들은 나눔공동체(대표 이왕욱 목사)가 주최하는 소록도 방문에 동참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자신보다 더 절박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더 꿋꿋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이들 부부는 가정의 소중함을 이들에게 말로, 행동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여느 가정과 똑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라면 아빠도 안일어났는데 왜 나만 일어나라고 그러느냐고 불평을 해대고, 학교에서 공부를 못해오면 화도 나요"
요즘 장애인복지신문 대구지사를 맡게 된 명희씨는 다른 맞벌이부부처럼 촌음을 다투며 살고 있지만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많은 곳을 돌아보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하는 그런 시간들로 새로운 가정의 꿈을 채워나갔다.
"해뜨는 집에 머무는 동안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험을 많이 하고 자라서 세상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체험했으면 좋겠어요"
은재식 김명희 부부는 최근에 들어온 코흘리개 수진이를 입양,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려 나갈 예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위탁가정 지원센터(053-564-8427)에 관심을 갖고 한명씩이라도 돌본다면, 우리 애들이 해외 입양될 일도, 시설원에 갈 일도 줄어들 거예요" 최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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