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당 텃밭 철옹성 공천이 곧 당선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간의 승부는 수도권에서 판가름 난다"는 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거의 없다. 수도권이 전체 지역구 의석의 40%정도이지만 수도권외의 나머지 지역의 60% 의석에 대한 정당별 향배는 거의 정해진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다름아닌 '지역구도'란 철옹성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선거 변수가 돌출됐지만 이 것 앞에는 '추풍낙엽' 신세였다.

현재의 집권 여당 측인 DJP연대가 50년 만에 이뤄냈다고 자랑하는 정권교체도 사실은 호남권과 충청권의 맹주가 연대한데 따른 결과일 뿐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결국 정치권 개혁을 부르짖는 여권이나 야당 모두가 이 문제에 있어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수혜자이자 공범인 셈이다. 또 서로 상대편 쪽에 원인이 있다고 몰아세우지만 속을 뒤집어 놓고 보면 오십보 백보다.

여야 각당이 자체적으로 내놓은 판세분석만 해도 그렇다. 영남과 호남 등 텃밭은 압승하는 것을 전제로 한 가운데 다른 지역에 대한 판세를 전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번 선거에선 텃밭지역에서 무소속 바람이 일 것이란 관측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실제론 호남권에서 무소속 후보가 설사 민주당 측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해도 결국엔 민주당 입당 혹은 친여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반대로 대구.경북권에서 당선된 무소속 후보는 반여적인 입장을 고수할 것이란게 지배적 전망이다.

충청권의 경우 한때 김용환 전 자민련수석부총재 등이 창당했던 한국신당 쪽으로 상당수준 기울었으나 시민단체의 공천 부적격자 명단 발표를 계기로 여권 음모론이 부각된 이후 또 다시 친 JP.자민련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지역구도 상황은 여야 각 당의 공천신청 상황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텃밭에선 공천이 곧 당선이란 인식이 팽배, 예비후보간의 경쟁이 조기과열돼 온 반면 취약지에선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때문에 상대 당의 텃밭지역을 피해 희망자가 폭주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총선은 차기 대선을 3년 앞두고 치러지는 예선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이 패할 경우 정권은 급속도로 '레임 덕(권력누수)'상황으로 빠지게 되는 동시에 대선 정국으로 치닫게 될 전망이다. 결국 치열한 선거전이 각 당간에 전개되면서 텃밭에선 지역주의 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재기나 지역신당 창당 등의 움직임 역시 이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교수도 "이번 선거에선 과거 어느 때보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더욱 비극적인 게 정치권이 지역주의란 과실을 따먹으려고만 할 것이란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은 궁극적으로 정당의 1인 보스, 지역 맹주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특히 텃밭지역의 경우 유권자들보다는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는 보스의 결정으로만 당락이 결판날 수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특히 여권에서 추진중인 대대적인 물갈이 움직임 역시 견고한 지역구도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다.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세대교체 움직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웅진 외국어대교수는 아예 "지역주의를 없애자는 발상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 뒤 "우리 사회를 다원화해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을 줄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정치권에선 이념이나 정책대결은 사소한 문제다. 여야 정당들 사이에서 상대적인 진보성이나 보수성은 있을지라도 모두 국민정당을 표방한 가운데 최대 표밭인 중산층과 보수층을 겨냥하고 있어 차이가 거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스가 다르고 그 출신지가 다르다는 것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노동당 등 최근 잇따라 창당되고 있는 진보정당들의 입지는 좁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결국 4월 총선은 더욱 심화된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 가운데 그에 따른 온갖 폐해가 복합돼 나타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선거 뒤에는 또 온 나라가 지역주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며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

徐奉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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