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기 위해 평양에 갔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 수상 간에 이뤄졌던 대화 내용이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국무부 문서에서 공개됐다.
9일 입수된 이 문서에 따르면 이 부장은 장기영 전 부총리, 최규하 대통령특별보좌관 등과 함께 지난 72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조절위 남북대표간 2차 회담을 가졌으며 김 수상과는 11월 3일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1시 50분까지점심 식사를 겸해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김 수상은 '하루빨리 어떤 형태가 됐든' 합작(coalition)을 위해 함께 뭉칠 필요가 있다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한 반면 이 부장은 연방제가 고려해 볼만하고 더 연구 검토해 볼만한 것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은 통일로 가는 단계로서 먼저 '민족회의'(national conference)를 개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민족회의' 개최를 제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는 처음이며 그 구체적인 내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연방제와 관련, 김 수상은 국호를 '고려연방공화국'으로 해야 한다면서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에게 이를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었다. 돌아가거든 박 대통령에게이 말을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장 전 부총리가 김 수상에게 '통일이 얼마나 빨리 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만약 박 대통령이 동의만 하면 우리는 한 달 안에, 아니 하루만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북한의 동기를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솔직히 말해서 나는 통일된 조국의 수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나는 아직 내 철학 저술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면서 '누가 통치를 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통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화 도중 여러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촉구했으나 이 부장은 공동협조가 잘 이행되고 조건이 성숙됐을 때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김 수상은 박 대통령이 좋다면 동생 김영주를 12월이나 1월쯤 박 대통령에게 특사로 보내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또 이 부장이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를 체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북에 와서 공산주의자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김 수상은 '공산주의자와 제휴를 시도할 만큼 용감하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영웅 칭호를 수여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이 부장이 극구 사양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김 대화내용은 평양회담 직후인 11월 9일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전문에 수록돼 있으며 최근 비밀해제된 A4 용지 5장 분량의 이 전문 머릿부분의 요약란에는 "한국 중앙정보부장이 평양 조절위원회 회담 초록 사본을 주한 미 대사관에 제공했음", "이후락과 북한 사람들과의 회동, 특히 김일성과의 회동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고 기술돼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 동안 2급비밀로 분류돼 '배포금지'(NODIS:NO DISTRIBUTION)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던 이 문서는 미국 워싱턴 D.C소재 한반도 정보서비스 넷(KISON)이 입수, 9일 제공해 왔다.
모두 6개항으로 돼 있는 이 전문은 남북 대표들 간에 '연방제'를 놓고 현격한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면서 "평양 회의의 중요한 본질적 측면은 토의에서 나타난 세 가지 단어, 즉 합작, 연방, 공동보조로 요약된다. 김일성과 북한 고위관료들은 시종일관 연방(confideration)으로 가기 위한 즉각적인 합작을 고집했으며 이후락 일행은 7.4공동성명에 나타난 공동보조라는 용어를 줄곧 주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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