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무슨 나라가 이래

'무슨 이런 나라가 있어…'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가 총선시민연대의 2차 낙천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거명되자 내 뱉은 말이다. 그가 6일간의 '일본 구상'을 마치고 귀국한 공항에서 두 여당간 공조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모택동의 비록'이란 책이 있는데 그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라는 코멘트로 답변에 갈음했다.

그 책의 내용은 모택동이 홍위병(紅衛兵)에 의해 권력을 사유화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란 게 그를 동행한 측근의 설명이다. 최근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그 상황에 비유한 것 같다고 그 측근은 부연했다. 낙천명단이 발표될 때 자민련에서 제기한 현 정권 핵심의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단체'를 바로 중국 문화혁명의 주체인 '홍위병'에 직접 연계시키고 있다고 봐야 할 대목이다.

DJ를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한 2년전 'DJP 연대'가 깨지는 순간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때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불복의 주인공인 이인제씨가 이번엔 DJ 신당인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앉았다. JP는 가고 지난 대선(大選)때 DJ의 정적이었는지 공신(功臣)이었는지 알쏭달쏭한 이인제씨가 DJ품에 안겨 총선 지휘 주자로 뛸 채비를 하고 있다. 최소한의 정치 도의가 도대체 있는건지 정말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정치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당정치가 뭔지 그야말로 헷갈리는 대목이다. 정말 무슨 이런 나라가 있는지…. 명색 한 때는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 바로 대선전(大選戰)에서 정적이었던 당에 들어가 그 휘하에서 국회의원 뽑는데 헌신하겠다는 이런 아이러니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부도덕(不道德) 몰정견(沒政見)의 장본인은 왜 낙천대상이 안되는지 그것도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이게 바로 낙천 대상자 선정에 따른 공정성 시빗거리의 첫 걸림돌이다. 그 뿐이 아니다. 야당 중견이 공동여당의 대표주자로 말을 갈아 타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지금 정치판은 무슨 '정치기술자들'의 스카우트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오고가고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다. 문제는 당의 젊은 중추세력이 지도부에 이같은 행태를 항변하는 목소리조차 없다는데 있다. 이래가지고 무슨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며 '새 정치의 장'이 열릴 턱이 없다. '새피'가 들어가면 뭘하나. 지도부가 '헌 피'로 가득차 있으면 금방 오염되기 십상이다. 이런 정치풍토속에서 흠있는 국회의원 몇몇을 바꾼다고 될 일인가. 낙천.낙선운동도 좋지만 근원적인 이런 지도층의 구태를 바로 잡지 않는 한 '새 정치'는 백년하청이다. 더욱 가관은 공천도 하기전에 정치입문의 젊은 신인이 사무실내기까지 벌써 5억을 썼다는 풍토가 선거현장에서 답습되는 한 시민단체의 수고로움도 허사가 될 공산이 짙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정작 심판해야 할 대목은 인물교체에 못잖은 2년여 집권여당의 공과(功過)임을 간과하고 있다. 건국이래 첫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임을 현 집권당은 자부하고 있는터이기에 더욱 꼼꼼히 성찰해야할 대목이다. 사실 IMF탈출엔 어느정도 성공했다는걸 인정해야겠지만 정치력엔 문제가 많았고 특히 도덕성 대목에선 거의 비틀거리는 형국을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몇번 사과까지 하는 찰나에 불쑥 튀어나온 게 바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었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알 수가 없지만 사실상 현정권에 위기탈출의 기회를 제공한 건 시민단체의 낙천운동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민단체들의 인물교체론에 실정(失政)이 덮혀져버렸다. 구세주나 다름없는 시민단체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었기에 대세론을 내세우며 불법용인(容認)발언까지 나온 건 아무래도 집권당으로선 다소 경솔한 처사였다. 악법도 법이고 지키라했거늘 세상에 어느 정권이 국법질서를 시대사조라는 이름아래 다소 무시해도 좋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가. 그 바람에 시민단체의 순수성마저 의심받고 있질 않는가. 또 그에 편승해 불법을 자행하겠다는 것도 온당치 않다. 자칫 그 불법의 부작용은 되레 시민단체에 부메랑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음을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JP의 '홍위변론'이 못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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