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21세기에도 행복하고 싶다

새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의 여운도 엷어지고 모든 것이 그대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예전의 그것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시간은 변함없이 60초가 흘러야만 1분만큼의 간격으로 시계바늘을 겨우 옮겨놓을 수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모든 매스미디어들이 봇물터지듯이 입을 열었다. '초고속 인터넷' '광케이블' '디지털 시대' '사이버 세계' '코스닥' '벤쳐'… 심지어 '테크노 댄스'라는 등 대중문화까지도 생소한, 그러나 생소하지 않은 말들로 가득하다. 갑자기 모든 물질들을 거대한 비이커에 넣고 마구 흔들어 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틈엔가 인간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려고 한다.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그립다고 말하면 진부함, 또는 뒤떨어진 사람들의 감상이나 자격지심으로 몰아붙이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첨단의 세기 일수록,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시귀가 우리의 가슴에 조용하고도 깊게 스며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새로운 문명을 얻기 위해 우리가 또 잃거나는 것이 있음을 문득 느꼈을 때 당혹감에 빠진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문명이든 자연이든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취하는 것인데, 충만이 곧 채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참으로 가깝고도 먼 구름 같은 말… 채우는 만큼 행복하다면 무슨 걱정인가. 모자라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늘 더 가지려고 하다 보니 '사람'이 희망인 것을 잊게 된다. 요컨대 '우리의 마음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라는 말을 나는 지금 이렇게 빙 돌려서 해 보는 것이다.

'웃으면 즐거워진다'라는 말이 있다. 즐거워야 웃음이 나오는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쪽에서 생각해야할 차이가 있다. 웃음의 미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다.

19세기 사회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독일의 '칼 랑게'는 '인간은 우니가 슬퍼지고 도망가니까 무서워지고, 웃으니까 즐거워진다'라는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항상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자신있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도 그 예이다. 우리들 마음속에 길이 있어, 생각의 방향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새 세기가 온다고 기죽지 말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인 것이다. 기계적인, 사이버적인 시대일수록 인간적인 감성을 이끌어내어 마음의 창문을 따스한 햇살 쪽으로 열어두고, 그 삶의 뽀송뽀송함이 그늘진 이웃에게 전해지는 여유와 따뜻한 사랑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새로움이라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면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큰 미덕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과의 만남의 극치를 이룰 것을 예견하는 21세기가 시작되었음은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마냥 축제에 빠질 일도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원한 명제는 인간의 참된 행복을 이루는 일이다. 그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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