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말이면 전국의 고교와 수험생, 학부모들은 언론보도에 촉각을 기울인다. 이때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그 해 대입전형방법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불만에 가득찬다. 왜 해마다 대입전형방법이 달라지고 그것도 3학년 1학기 들어서야 발표하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 희망에 따라 일찍부터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한다 해도 진학을 위한 방법은 고3이 돼서야 가늠해볼 수 있다는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입수능시험이 임박한 10월말이나 11월초에도 일어난다. 신입생 모집요강과 정원이 그때야 확정, 발표되기 때문. 2000학년도 대학 신입생 모집요강은 수능시험을 1주일 앞둔 지난해 11월10일 발표됐다. 특기와 적성에 관계 없이 시험을 치르고 난 뒤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라는 요구나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초·중·고 교육의 중심은 일부 실업계고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학력신장과 대학입학이라는 고지를 향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교육비 증가와 교실붕괴, 사제간 신뢰붕괴 등 최근 교육이 안고 있는 최악의 상황도 궁극적으로는 대학입시 과열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아이러니하지만 교육당국이 교육개혁이나 교육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발표해온 수많은 정책들이 이를 부채질했다.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시험으로 이어지는 시험제도의 변화, 선지원-선시험의 악순환, 늘었다 줄었다 하는 대학 정원 등이 대표적이다.
오락가락하는 입시정책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던져준다. 학교와 교사들이 갈피를 잡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다 보니 학부모들은 혼란에 대한 불안을 입시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다. 2001학년도 입시부터 제2외국어를 수능시험에 포함시킨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각 학원에서 일제히 제2외국어 과목을 개설하는 식이다. 사교육비 절감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는 교육부가 사교육비 증가를 앞장서 부추기는 꼴이다.
윤일현 일신학원 진학실장은 "지금까지 입시관련 각종 정책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컸던게 사실"이라면서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입제도를 안정시키고 시험 출제방법도 예상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입시위주 교육과 함께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큰 문제는 학생 생활지도다. 입시와 학력을 우선하는 풍토는 학생들 사이에 '학교에서는 자거나 놀다가 학원가서 공부하는' 현상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밖 공부가 학교공부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학생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학교에 대한 신뢰, 교사에 대한 존경을 바라고 학생으로서 올바른 생활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다.
교사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과밀학급을 꼽는다. 빡빡한 수업시수, 과도한 잡무 속에서 학급당 40~50명의 학생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쏟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수행평가도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과밀학급 해소 없이는 정착시킬 수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중학교 교사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학생들에게 오로지 강의만 신경 쓰면 되는 학원이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 "학급당 인원을 30명 미만으로 줄이고 교육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생활지도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교육의 위기는 과열입시와 교실붕괴라는 양 극단으로 대표된다. 이는 곧 교육정책과 학교의 실패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다. 현 교육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정부든 학교든 교사든 학부모든 학생이든 교육주체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것은 원인과 해법에 대한 각 주체의 시각에 차이가 너무 난다는 점이다.
'교실붕괴의 원인과 대책'을 주제로 지난달 말 영남대에서 열린 공동학술회의 토론내용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부산교대 심성보 교수는 "학교붕괴는 가정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제한 뒤 '나 중심주의, 핵가족화, 권위주의적 양육방식, 자율문화 부재, 가부장주의와 과도한 평등주의, 대중매체의 가치관 부재, 가정의 도덕적 기능 상실, 가정규범의 부재' 등 8가지를 가정붕괴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학교와 가정이 붕괴하는 현실을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와 가정의 협동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흡 구미선산초등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을 무시한 수요자 중심 교육이 결국 교육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면서 "경제논리로 교육을 몰아나가려는 발상에서 벗어날 때 교육은 살아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의 분발과 그에 합당한 대우, 교원 정년 환원, 연금문제 개선, 학교단위 자치행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정금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장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가정에서 연유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반박했다. 문제 부모가 문제 학생을 만든다거나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이 학교붕괴를 초래했다는 견해는 너무 안이한 시각이라는 것. 그러면서 교실붕괴 원인의 하나로 학부모 교사 모두가 교육에 있어 학교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 학교를 사회 속의 섬과 같이 둠으로써 현실감을 잃고 경직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학교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학부모가 적극 동참하고 학교운영에 교사와 학생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학교에 활기를 되살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교육위기 문제는 논의를 확대시키면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세계 각국이 21세기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높이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이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가 구체적인 면에서는 우리와 차이가 있겠지만 위기상황이라는 인식만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해법을 적극 찾아나서고 해결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위기상황이라는 주장만 난무할 뿐 토론조차 활성화되지 못한 채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단과 해법만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구고 안인욱 교장은 "학부모와 지역사회, 교사와 학교가 일체가 돼야만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학교에서 가족의 날 운영, 밥상머리 교육 강화, 학부모 학교방문의 날·주·달 운영, 학부모 연수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결국 각 교육주체가 참여하는 교육공동체 건설이 시급하다는게 교육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학교-교사, 교사-학생, 교사-학부모, 이들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 이를 위해 작은 문제부터라도 해결하는데 각 교육주체가 힘을 모으는 일, 새로운 세기에 우리 모두가 서둘러야 할 숙제라는 것이다.
金在璥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