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全斗煥씨의 개탄'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 88년11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되씹으며 백담사로 거처를 옮긴 후 영하20도에 근접하는 혹한속에 비닐로 바람막이를 하며 함지박물에 목욕을 하던 시절이었다. 화려했던 집권시절, 그를 따랐던 한 정치권 인사가 그를 찾아 찬 방바닥에 넙죽 절부터 하고 좌정을 하기 무섭게 그는 물었다. '자네는 인간이 발명한 물건중 가장 편리한 것이 뭔지 아나?' 왕년의 스타일처럼 힌트도 안주고 느닷없이 내지르는 질문에 방문자는 '글쎄요, 비행기도 있고…'하고 눈알만 굴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느 산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갖고 왔는지 어울리지도 않게 자신이 쪼그리고 앉아있던 시골 학동용 의자를 가리켰다. 냉골에 앉아야 하는 고통을 면하게 해준 학동용 의자가 그에게 그토록 편리함을 느끼게 해 줬으니 실로 고승대덕(高僧大德)뺨치는 깨우침이었다. ▲그런 그가 14일, 또 한차례 깨우침을 얻은 것 같다. 동남아 4개국을 방문하기 위한 출국장에서 동생과 사위의 총선 출마에 대한 소감에서 '권력을 잃고 나니 통솔력도 없어진 것 같아. 얼마나 큰 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마음대로 한다'고 개탄(?)했다. ▲대권을 장악하기 전, 그의 군대시절 통솔력에 대해선 그런대로 전해지는 얘기가 있지만 동생, 사위와 권력을 연계시킨 사실엔 쓴웃음이 나온다. 본인이야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본시 동생은 남이 되는 시초요, 사위는 반자식이라고 했다. 온자식이라도 무릎에 앉혀놓고 꼬물거릴때 자식이랬는데 황차 불혹을 바라보는 반자식을 상대로 개탄해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대권을 놓았으니 일이 이지경이 됐다는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 싶으니 그의 입담도 수준급이다. ▲정치재개설과 관련해선 '대통령까지 한 내가 영남지역 시의원을 하겠느냐. 그런 소리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니 한때 퇴임후 일해재단을 제2의 바탕으로 삼으려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깨달음인지 너스레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를 초청한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와는 연고가 없었다지만 그야 가보면 알것. 다만 훈센은 베트남에 망명해 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과 함께 젊은 총리로 귀국한 승부사라는 사실은 알고 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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