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최창국(논설위원)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는다'고 한다. 당초부터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공천혁명이니 상향식 공천이니 하면서 흰소리만 골라가며 하던 집권당의 공천실상은 그야말로 물 한그릇도 정갈하게 올려놓지 못한 초라한 제사상이 되고 말았다. 호남지역 현역 물갈이가 60%선이니 어쩌니 하면서 바람을 잡은 결과는 겨우 10여명 수준의 탈락에 그쳤다.

공천심사위에 기준 등 모든 것을 맡겼다는데 본격심사는 시작도 하기전에 내정설, 회생설 등이 나돌때부터 대충 예측된 결과다. 불과 한달전에 총선을 위한 개각을 했고 이에따라 멀쩡하게 남아있던 장관들이 하루 아침에 징발돼 선거구까지 확정된 듯 보도된 것이 불과 며칠전이다. 지구당별로 당원들의 비밀투표 방식 등으로 지역총의를 모아 공천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방식은 애초부터 씨가 먹히지 않는 얘기였다. 당 수뇌부와 실세들은 처음부터 여론조사를 무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렀다. 후보별로 여러지역에 대입해서 보통 4차례정도 조사를 벌여 그중 반응이 좋은 지역구를 고르는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공천심사위원들이 누가 어느 지역에 내정됐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란 원론은 이미 봄볕에 눈녹듯 깨끗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틈에 무명(無名)의 신진인사들과 여성들의 공천입지는 처음부터 고려대상밖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장기판의 말 옮겨지듯 이 지역, 저 지역으로 황당하게 옮겨가다 보니 출마 예상지역이 다섯군데나 오른 사람도 있었다.

새 천년의 첫 국회의원이란 제목에 합당한 정치엘리트의 발굴은 제쳐두고라도 예비철새들만 양산하는 모습이 아닌가. 이른바 386세대가 빛을 본다니까 전혀 검증되지 않은 운동권출신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 뒷감당을 무슨 수로 다 해낼는지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인들 무슨 진선진미(盡善盡美)의 방책을 내놓을까만 결국 3차례에 걸친 명단발표도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들이 선정한 공천반대의원은 무슨 '대안부재'니 '당에 대한 기여도'니 하는 허황한 말장난에 힘 한번 쓰지 못했다.비리·부패·반민주 전력 등등 갖가지 기준의 시험(?)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사람은 살아났고 줄기차게 그들과 공개토론을 요구하며 당당하게 나왔던 어떤 중진은 기어코 탈락되는 모양이다. 모르긴 해도 한때나마 성향을 달리했던 또 다른 당시 야당에 관여했던 것이 괘씸죄로 작용됐을는지…. 대체로 보면 시민단체들이 선정한 불합격 정치인 중 60%정도는 여야 모두에서 공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들 역시 처음부터 말을 너무 크게 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검찰은 이들이 조직적인 낙선운동에 나설땐 구속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무엇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향후의 입지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같다.

흔히들 정치는 보수 그 자체라고 한다. 그 속성으로 볼때 개혁이란 애시당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런 점은 수뇌부일수록 더욱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 않다. 다른 분야와는 달라서 정치판의 보수성향은 곧 기득권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개혁성향의 초선의원을 많이 포용해봤자 총재들에게는 현실적인 이득이 줄어들 뿐 속말로 남는 게 없다. 초선의원이라면 드넓은 국회청사의 지리익히기와 복잡한 의결 메커니즘을 외우다보면 4년이 후딱 가버린다. 이른바 물미를 틔우려면 최소한 재선급은 돼야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 총재급들이 초선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바라는 것은 역시 나무위에 올라가서 고기를 구하려는 것과 다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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