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자가 뭘...고정관념 깨기

2000년대 들어 장애인 노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 계층으로 치부돼 온 한국여성들의 약진이 전방위적으로 두드러지는 소위 '여풍'(女風)이 거세다.

서울과 지방 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여풍은 크게 세갈래.

첫째 여풍은 법적·제도적·환경적 정비의 결과로 인해 불어닥칠 변화, 둘째 여풍은 전업주부 혹은 여학생들이 일으키는 고정관념 깨기, 셋째 여풍은 전문직여성 혹은 근로여성들이 몸담아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네트워크를 이루어 불러일으키는 개혁의 바람 등을 들 수 있다. 여풍의 현장과 개선돼야 할 점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여성비례 할당제

올들어 가장 강력하게 불어닥친 여풍은 국회를 통과한 '총선의 비례대표 30% 여성 우선 할당'. "늦었지만 30% 여성 우대 할당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30% 여성할당제가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으려면 당선 가능한 앞자리를 여성들에게 할당해야만 합니다"

"꽁무니 30%에 여성을 공천하는 것은 여성표를 겨냥한 생색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구시여성정책위원회 김복규 위원장(계명대 교수, 행정학)은 "당선 가능한 순번에 여성을 우선 배치하여 여성은 만년 정치들러리라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지난 12일 정기총회를 가진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 신동학 회장 등은 능력있고 정열적이면서 순수한 젊은 피를 지닌 여성을 엄선하여 여성비례대표의 적임자로 제출할 뜻을 갖고 있다.

지역에서 여성관련 제도정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경북도가 각종 위원회에 여성의 참여율을 평균 20%대 이상으로 크게 높인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성이 참여하고 있는 위원회는 지방보육위원회나 아동복지위원회같은 사회복지 관련 위원회에서 높은 참여를 보이고, 시정 또는 군정 조정위원회, 조례규칙심사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기타 공무원 관련, 지방재정 관련, 지방경제 관련, 건설 관련, 지역문화 관련위원회 등에서 여성위원의 참여가 거의 미미한 수준이어서 개선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아줌마들의 역발상

'2000년 여성 돌풍'을 일으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서 30% 여성할당을 따오기까지 여성들의 주변화 신세를 벗어나서 주류로 진입하기 위한 단체들의 맹약은 90년대 중반부터 시도됐고, 아무런 법적·제도적 특혜를 누리지 못하는 전업주부 소위 아줌마들의 문제 제기와 행동개시가 돋보였다. 특히 인터넷사이트에서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사회에서 아줌마들을 소위 3포족(우아함의 포기, 여자이기의 포기, 부끄러움의 포기)이라고 모멸하는 눈총을 보낼 때 역설적으로 그들은 3포족의 파워를 무기로 삼아 아줌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자식과 남편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해체가족의 자녀들과 실직여성을 위해, 호주제의 개선을 위해서 아줌마들은 3포족의 뻔뻔한 용기를 택했다.

대구의 전업 주부들이 모인 함께하는 주부모임(공동대표 정경숙 우정애)은 살림 사는 엄마들의 섬세한 마음을 살려서 실직여성가장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실천운동을 펴고 있고, 우리복지시민연합 김명희씨는 버려진 아이들에게 가정의 따뜻함을 제공하는 위탁가정 '해뜨는 집'을 5년째 소리소문없이 제공하고 있다.천주교대구대교구 여성연합회(회장 김숙자)와 대구여성회는 여성차별과 직결되는 호주제 철폐를 위한 공동세미나를 열었으며, 대구여성회는 호주제 철폐를 위한 거리굿을 펼치기도 했다.

'아줌마가 뭘 안다고?'라고들 하지만 삭막한 아파트문화를 살맛나는 공동체로 꾸미려는 노력도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부설 주부기자단(단장 이영화)이 기울이고 있고, 촌지 등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모임인 참교육학부모회도 대구지역 주부들로 구성돼있다.

▨공직

육·해·공군 3사를 통틀어 공사에서 첫 여성대대장생도(남미영, 공사 49기)가 배출됐고, 2000년도 사관학교 신입생 가운데 육사 해사에서 여학생이 수석을 차지했다.

여군은 2010년까지 현재 2천100명인 여군을 4천명으로 늘려서 국방정원의 0.6%를 여성으로 충당하고 2001년부터는 여군 전담 교육기관인 여군학교를 폐지하고 남성과 동등한 과정으로 교육시킬 계획이다.

중앙의 기획예산처는 예산실에 금녀의 벽을 깨고 첫 여성사무관(장문선)을 배치한 데 이어 기초자치단체인 달서구청에서 행정지원과(옛 총무과)에 첫 여성사무관을 배치하여 장차 여성국장 탄생을 기대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여성공무원들이 배치받는 곳은 대부분 민원·여성관련 부서에 치중되고 있어서 배치전환에서 동등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여성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 대구시의회에 3명(백명희 부의장, 김화자 예결위원장, 장정자 의원), 경북도의회에 3명(손희정, 이양강, 이금선)의 여성의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기초의회에서도 대구지역에 3명, 경북지역에 1명이 활동하고 있다. 대구 중구의회의 송금선 의원은 운영위원장으로 지역주민과 함께 뛰고 있다.

의회를 지원하는 의회사무국에도 여성진출이 늘고 있는데 대구시의회 운영위원회에 김옥자 운영전문위원이 있으며 경북도에는 박성희씨가 배치돼 있다.

교단에서도 여선생의 비율이 늘어서 교단의 여성화가 우려될 지경이지만 실제 교단 책임자의 여성비율은 뚝 떨어지고, 유치원에서 대학으로 올라갈수록 여성비율이 낮아져서 여교수 비율은 2%대를 맴돌고 있다.

지난해 연말 대구경북지역 여기자특위가 구성된 데 이어 대구시여성정책위원회는 여성시대에 발맞춰 여성직장협의회를 구성할 뜻을 갖고 있다.

▨비지니스계

이밖에 여풍은 비지니스 현장에서도 불어오고 있다. 비지니스 현장에서의 여풍은 연대의식을 갖고 시작하는 게 돋보이는 점이다. 지역의 여성인터넷 기업인들이 모여서 여성소호벤처창업협의회(회장 최현애 홈라이크대표)를 구성, 자체 정보를 주고받는 데 주력하나하면 여기에 뜻을 둔 후배여성들을 위한 교육과 정보제공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대구지역에서 영세사업을 하는 상공인들이 모여서 여성소상공인회(대표 김분란)를 만들었나하면, 각 단체 부설 여성문화소모임에서도 문학 방송 영화 등에서 여성차별현장을 찾아내서 시정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대구효성가톨릭대 김경화(여성학) 교수는 "여풍이 분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까지 여성차별이 엄존한다. 여성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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