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해야만 나라가 잘 살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한마디로 국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말이 사람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단순한 생각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 말이면 어떤가. 세계인들과 뜻만 잘 통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
그러나 국어는 우리의 삶의 양태이고 그릇이며 삶 그 자체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영어를 하면서 살아서는 안된다. 모국어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영어를 잘 구사해 잘 살게 된다고 한들 뭐가 대순가. 사람은 잘 살기 위해서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제시에는 일어를 공용어 혹은 유일 국어로 사용해야만 잘 살게 된다고 주장했었고, 더 나아가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사용해야만 문화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천해빠진 언문으로써 어떻게 문화백성이 될 수 있느냐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문 국문정책과 일본어 국어정책에 적극 나섰던 사람들이다. 일어가 공식어로 쓰이던 일제치하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반 일본인이 되어 있었다. 지금 한국의 대학사회에 일본어를 공식어로 해서 공부한 학자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해방된 지 5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학내에 있었을 때를 회고해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매일 벌어졌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일본책을 가지고 와서 해결하려 했다. 거기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 일본의 일인 교수에게 전화해서 자문을 구했다. 그 일인 교수는 옛 은사가 아니면 동료였다. 민족사학자인 고 홍이섭 선생이 사적인 자리에서 일제시대에 일본어로 공부한 세대가 다 죽는 시대가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국어가 있는 단일 민족에게는 공용어란 있을 수 없다. 일본인들이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들은 어차피 세계인이 알아주는 이코노믹 애니멀이 아닌가. 장기 경기침체는 초토화 되었던 세계대전의 피해액의 두 배를 그들에게 가져왔다. 그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는 다만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할 뿐이다. 전국민이 영어를 다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관계분야 종사자들이나, 학자들, 일부 공무원들, 정보통신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뿐이다. 전 국민이 무슨 이유로 영어로 일상어를 씨부렁거려야만 한단 말인가.
세계화해야만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지난 1월의 다보스포럼과 2월 방콕에서 있었던 유엔무역개발회의 주제가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였다. 민간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시위는,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는 결국 경제의 남북문제(빈국과 부국의 양분)로 결론나는 것밖에 더 있느냐는 것이다. 강대국의 경제력 확산을 위한 글로벌화라면 그만 두라는 시민들의 열광적인 반대시위를 음미해 보아야 한다.
강한 나라에 빌붙어 눈치보고 살아가는 식민지 근성을 버리자. 네덜란드를 배워야 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에 에워싸여 있지만,네덜란드는 철저한 외국어 조기 교육으로 전국민이 중학교만 나오면 영어 불어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네덜란드어를 끔찍이나 아끼고 사랑한다.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와 너무나 비슷하므로 조금만 방심하면 언어가 동화되고, 나아가 민족 자체가 동화되어 버리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 신문에서는 콧대 센 프랑스인들도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런 기사를 쓴 기자의 프랑스 체험이 몇 년이며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되묻고 싶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3만3천명의 언어요원을 세계에 보내 불어를 보급하고 있으며, 불어보호법을 만들어 영어를 차단하고 있다. 그들도 요즈음은 영어를 많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제통상분야에 한한다. 문화나 학문, 예술분야에서는 어림도 없다. 불어를 모르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인도와 필리핀, 싱가폴의 경우도 오랜 세월동안 영국과 미국의 통치를 받아 기왕에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도는 700여개의 다민족어, 필리핀은 100여개의 다민족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공식어를 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역을 하든, 인터넷을 하든, 학문을 하든 영어가 필요하면 열심히 배우라. 그러나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자는 발상은 절대로 하지 말자. 그것은 국권을 내어주는 일이요,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을 절대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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