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식의 차이, 그 두려움

중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에서 여간해서 맞히기 힘드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무슨 함수 그래프였던가? 바로 놓였거나 엎어 놓은 항아리 모양의 그래프를 상정하고, 그걸 설명하는 문항이었다. 바로 놓인 것의 경우엔 "아래로 볼록하다"고 표현해야 맞는 답이었다. 그러나 기자는 늘상 "위로 볼록하다"고 답해 틀리고 말았다.

그래프 전체로 보면 아래로 볼록한데도, 위로 갈수록 벌어지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니 생각을 바꿀 수 없었던 때문이다. 30년도 더 지나서야 기자는 내 답안이 어째서 틀렸던지를 알게 됐었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잘못된 점을 지적한 책을 읽던 중 놀란 대목이 있었다. 그 이전에 기자는 친구로부터, 택시나 버스의 끼어들기 같은 횡포를 대범하게 받아 들이도록 충고받은 적이 있었다. "직업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그 정도는 봐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외국인은 그 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직업적일수록, 승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운전을 더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화 1명 사망에 비상사태"

일년 전쯤 일본 도쿄에 한참 머무른 일이 있었다. 지하철을 큰 어려움 없이 타고 다닐 수 있고, 중심지 지리도 어느 정도는 알 만큼 도쿄는 기자에게 서울 보다는 더 낮익은 곳이다. 그런 도쿄의 어느 파출소에서 기자는 놀라운 플래카드를 만났다. '비상사태! 교통사고 1명 사망' 사람 하나 죽었다고 비상사태라?

지금은 줄었지만, 기자가 경찰서를 출입할 때만 해도 대구에서는 평균 매일 1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때문에 1명 정도의 윤화 사망은 아주 범상한 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걸 비상사태로 생각하다니?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가르쳐 주는 예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가 자기 집 앞에 남의 차에 대한 주차 방해물을 설치하는 시민에게 무슨 벌칙을 매기겠다는 발표를 했었다. 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취재차 찾았던 기자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었다. 어느 주택가에서, 빈 자리가 많이 있는데도 취재차량 운전자는 주차를 못해 당황해 했다. 남의 집 앞이나 담장에 붙여 차를 세우면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낯선 차가 집 주인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신고만 하면 곧바로 처벌받는다"는 얘기였다. 기자는 샌프란시스코의 인식을 지지하는 쪽이다.

생각을 바꾸면 문제가 보인다

이런 기자에겐, 주택가에 음식점들을 마구 허용하는 우리 행정법도 아주 불만스럽다. 주택가는 안전하고 조용하게 보호돼야 할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선 레스토랑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마구 허용된다. 어느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의 얘기를 듣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위기라는 보도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해당 기관에서는 곧바로 "그런 일 없고, 안전하다"는 광고를 내 보낸다. 하지만 실랑이는 신문.방송과 해당 기관 사이에서만 머무르고, 정작 그 일에 가장 민감해야 할 일반 국민들이나 그 대표라는 국회는 별무반응인듯 하다.

그래도 될까? 우리 사회에 그나마 서민을 위해 장치된 안전판이라곤 의료보험 정도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의료보험이 결단나는 것 못잖게, 국민과 국회의 무덤덤한 반응이 기자에겐 더 놀랍게 느껴진다.

지금 경찰 관서들의 현관 마다에는 꼭같은 구호가 나붙어 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고. 말을 바꾸면 어떨까? "생각을 바꾸면 문제가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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