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상적인 서술로 이어진 책은, 읽을 때는 감동스러울 수 있어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것은 들을 때는 재미 있지만 곧 아무 기억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감자 이야기'(지호 펴냄)는 그와는 반대되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본다면, 감자가 뭐 그리 대수로운 것이냐고 흘려버릴 수도 있을 법하다. 더욱이 우리는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깊이 보면 다르다.
우선 이 책은 감자라는 작은 한 주제를 따라 역사를 읽는다. 본문에 따르면 감자는 페루가 원산지로, 유럽에 알려진 지가 400여년밖에 안되고,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300년이 채 안된다. 그런데도 감자는 그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중요한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아일랜드에선 감자 덕분에 인구가 급증했다. 그 전엔 자주 닥치는 기근 때문에 한꺼번에 인구의 10%를 잃는 때도 있었지만, 감자 재배가 시작되고는 이런 문제가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런 기근과 인명 피해는 우리 조선사에 자주 등장하는 것. 이 때문에 기근이 우리에게나 있었던 일같이 여기던 사람이라면 생각을 고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또 감자는 산업혁명의 뒷바라지도 했다. 인류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기 시작함으로써 여러가지 식량 문제가 대두됐을 때, 바로 이 감자가 그것을 해결해 줬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감자이지만, 초기엔 유럽으로부터 터무니없이 외면당했던 이야기도 이 책에 서술돼 있다. 인류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무지몽매를 되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땅밑에서 생산되는 것에는 '악마'를 연결지으며 거부감을 나타냈고, 특히 뿌리 줄기식물에는 극도의 혐오감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감자는 보급되고도 오랫동안 육종이 외면됨으로써, 역병이 번져 심각한 감자 흉년이 들기도 했고, 이것은 대규모의 미국 이민을 촉발했다고 이 책은 적어 놨다.
이 외에도 이 책엔 배울 것이 있다. 세밀한 연구 자세가 그것. 해석 위주의 허황한 연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파고듦이 감동적이다. '소설의 기원'이란 책이 근세 유럽의 소설 발전 바탕을 분석해 냈던 그런 치밀함을 연상시킨다. 책읽기를 위한 촛불의 밝기, 독자층의 여가 시간 변화 등을 모두 분석한 뒤에야 결론으로 접근해 가는 그런 유형이다.
朴鍾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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