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학자 최한기선생의 저서 '기측체의(氣測體義)'에는 '어물 가게나 난초가 있는 방에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염착됨의 치우치고 막힘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이미 160여년전에 비통(鼻通)에 대한 연구를 통해 냄새의 정체와 향기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우리가 생활에서 흔히 맡지만 별다른 의식없이 지나쳐 버리는 각양의 냄새와 향기의 특질은 어떤 것일까. 또 동.서양은 어떻게 고유의 향 문화를 가꿔왔을까. 향 전문가인 우향연구소 송인갑소장이 쓴 '냄새-우리의 향을 찾아서'(청어와 삐삐 펴냄)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지내온 향에 대한 기억과 향이 갖는 의미, 향에 얽힌 이야기 등 향을 자세하게 연구한 향의 문화사이자 향을 찾아가는 여행기다. 우리의 옛 향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들과 향수 용기, 향수 광고, 모델, 향수 사용법 등 각 향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후각 기관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히고자 노력했다. 이후 냄새의 암흑시대로 불리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향이 영혼에 유익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찬양됐다. 18세기 루소는 후각을 '상상력의 감각'이라고 불렀고, 19세기 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능을 가진 후각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하지만 후각의 비밀 중 그 일부나마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면서다. 뇌의 전자신호 효과에 대한 실험과 분자생물학 연구의 본격화로 인해 후각에 대한 연구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향은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 저자는 향은 모든 것을 살아있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향은 우리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들고 신비스런 후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이나 특별한 경험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수한 밥짓는 냄새와 된장국 냄새, 어릴적 맡은 어머니의 체취, 시골길에서 스쳤던 나무와 풀 냄새, 추운 겨울날 동네 친구들과 나무와 건초에 불을 지펴 감자나 고구마를 넣어 익기를 기다릴때 코끝에서 솔솔 맴돌던 냄새... 이같은 냄새에서 감각적 기억들은 향수어린 그리움과 섞여 있다.
냄새는 동.서양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찍 도시화가 이뤄진 서구의 경우 육식 중심의 식문화와 닫혀진 주택구조 등으로 인해 몸이나 주변 환경이 늘 좋지 못한 냄새로 가득하다. 때문에 인위적인 향으로 좋은 냄새를 풍겨야만 했다. 반면 동양 특히 우리나라는 농경중심의 트인 공간과 초식 중심의 식문화로 인해 굳이 인위적으로 좋은 향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늘 몸이나 집 가까이에 자연의 냄새가 있었다.
또 서양의 향이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좋은 냄새를 발산한다면, 동양의 향은 내적 정신을 중시하고, 약효로서 기를 다스리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문향(聞香) 또는 이향(耳香)이라는 말을 썼다. 향을 맡지 않고 듣는다는 표현이다. 향을 맡지 않고 들음으로써, 향기 그 자체를 넘어 깨달음 즉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다.
송씨는 우리 전통 향을 찾기 위해 각지를 답사했다. 안동 일성 문씨의 묘에서 나온 향낭에서부터 강원도 봉평의 산채시험장, 하동의 차밭, 강진의 편백향, 정선의 눈측백나무향 등 빈틈없이 우리 향의 근원을 찾아 둘러보았다. 이런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 조향기술의 실태와 그 낙후성, 향 문화의 부재 등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한반도에는 향의 추출이 가능한 자생식물이 많지만 연구개발과 투자를 게을리해 버려지고 묻혀진 식물들이 너무나 많다"고 개탄한다. 지금이라도 대단위 재배를 위해 정확하게 성분을 분석하고, 재배 방법을 연구하는 한편 "향에 대한 국민의식 수준을 높이고, 기업이 적극 투자한다면 묻혀있는 보물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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