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 휘두른 이총재가 최대 피해자

'중진 대학살'로 불리며 그 여파가 신당 창당으로 번져가는 2.18 한나라당 공천의 최대 피해자는 낙천된 중진들이 아니라 공천의 칼을 휘두른 이회창 총재라는 역설적인 말이 나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현역 국회의원의 진단이다.

당장은 낙천자들이 눈물을 삼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총선보다 대선을 목표로 하는 이 총재가 대국민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접전이 예상되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플러스 요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정치인을 제거, 당의 이미지를 일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어차피 이 총재가 텃밭으로 삼고 몰표를 받아 내야 하는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지역에서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바람잡이까지 동원하는 등 비겁한 수단을 썼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바로 "아무리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정치판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나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특히 정서적으로 어떤 덕목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영남권의 민심을 고려할 때 이 총재가 대선이나 지방선거때처럼 폭발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이회창체제 출범의 1등 공신인 김윤환 고문이나 지난 대선 직전 합당, 득표에 일조를 한 이기택 고문에게 보여준 제거방법과 절차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또한 지역 정치권에서는 김.이 고문 두 사람 대신 엉겁결에 공천을 받은 인사들이 서울에서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광역의회 의원들이라는 점 또한 이 총재가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정치적 '수모'를 안기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처사라고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표의 득실을 따져 볼 때 이 총재가 서울.수도권에서 더 얻을 지도 모를 표보다는 영남권에서 잃을 수 있는 표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당장 이 총재나 한나라당의 지역내 지지도가 갑작스런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이번 공천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 때문인지 이 총재의 열렬한 지지파들도 "이 총재가 설익은 밥을 너무 빨리 삼키려 한 것 같다"며 정치적 '소화불량'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이 총재가 주변 인사들의 잘못된 보좌로 순풍만이 존재하던 영남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자신에 대한 지지도인양 너무 과신하는 것 아니냐"는 역풍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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