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벤처와 복권

1492년 콜럼버스는 산타 마리아호를 비롯 3척의 범선을 이끌고 스페인의 팔로스만을 출항했다. 진정 지구가 둥글다면 마르코 폴로가 실크로드를 따라 갔던 중국이나 인도를 바다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도 닿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서.

콜럼버스가 성공하자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엉성한 해도(海圖)와 관측기기만 믿고 서쪽 바다로 나아갔다. 그 당시 항구를 떠난 100척의 배 가운데 겨우 3척만이 황금과 향료를 가득 싣고 돌아왔다. 돌아온 3척은 당연히 침몰한 97척의 손실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콜럼버스와 그 후예들은 요즘 용어로 벤처창업가였고,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콜럼버스에게 항해 자금을 지원한 이사벨라 1세는 요즘 말로는 엔젤투자가에 해당한다.

##벤처기업 성공률 0.03%

20세기 초 미국에는 자동차회사가 무려 1만개나 되었다고 한다. 1903년 창업한 포드 자동차는 미국의 502번째 자동차회사였다. 그 당시 수많은 마차 제조공장들은 마차에 말 대신 엔진을 다는 자동차회사로 전업했는데, 그들 또한 벤처기업가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자동차 회사는 소위 빅3라고 불리는 3개 회사 뿐이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 아이디어를 갖고 은행가를 찾아가 소위 창업자금을 요청했다. 그 은행은 "마차가 이렇게 많은데 누가 자동차를 사겠소"라고 포드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일만개 자동차회사 가운데 지금은 3개만 남았으니 자동차 사업의 성공률은 0.03%인 셈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벤처 선진국 미국에서 벤처기업의 성공률 0.03%라고 한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창업과 벤처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영속성은 창조적 파괴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를 먹여 살렸던 사업과 기업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등장하고 사회와 경제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한 시대의 주도적 산업이 등장할 때는 언제나 혼란이 일어나고 혼란 속에 기회를 잡은 사람은 큰돈을 벌기 마련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그렇고, 소프트방크의 손정의씨가 그렇다.

##벤처육성 '뭘 모르는 발상'

IMF 이후 우리 나라에 생게유지형 점포에서부터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벤천에 이르기까지 창업하는 기업 숫자가 늘어나고, 실업자는 줄어드는 것은 경제적 의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반가운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처럼 일고 있는 창업과 벤처 붐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정부가 2005년까지 벤처기업 4만개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뭘 잘 모르는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보호와 지원을 받으면 강하게 크지 못한다.

미국에서 실리콘 밸리가 융성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정부의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중대형 컴퓨터 산업이 일본에게 뒤질 무렵 보스턴 128번 도로 지역의 대기업들은 중앙정부에 지원을 호소했고,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IBM과 UNIVAC 그리고 DEC 등은 쇠퇴하고 말았다. 실리콘 밸리에는 정부의 지원도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새로 생겼다. 문자 그대로 적자생존이었다. 벤처창업은 그런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나라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투자자금만 노리고 있거나, 벤처라는 말이 붙은 기업에 무조건 투자하는 눈먼 투자자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벤처를 지원하다는 발표만하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부 예상문제엔 침묵

벤처 창업가는 콜럼버스처럼 망하면 죽을 각오로 하는 것이고, 벤처 투자가는 재산을 몽땅날릴 각오로 하던지, 아니면 여유돈을 조금씩 모아(소위 벤처펀드에)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말을 알쏭달쏭하게 하기로 유명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최근에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복권이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주택복권을 예로 들어보자. 1천원짜리 주택복권 1회 중 총 발행금액은 36억원이고, 그 가운데 18억원을 당첨금으로 지급하므로 당첨 확률은 50%이다. 그러나 1등 상금 3억원에 당첨될 확률은 360만분의 1이다. 그렇게 낮은 확률인데도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것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우연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아마도 복권을 몇 장 산 사람은, 자기가 산 복권이 고액 당첨되기를 간절히 기도할지도 모른다.

성 어거스틴은 "산을 옮기는 것은 간절한 기도가 아니라 삽과 괭이와 땀이다"라고 했다. 벤처 투자는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미국의 나스닥 지수는 80%가 상승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락종목이 전체의 40%였다. 5천여 나스닥 종목 가운데 16개 종목이 전체 상승분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투자의 원칙은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것이다. 정부나 벤처 기업의 장밋빛 전망만 믿고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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