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은 "수학이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말한 것이 진실인지도 모르는 과학이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수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의(定義)가 수학만큼 엄밀하고 완벽한 학문도 없지만, 연구 대상을 바로 수학자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인문과학의 정의는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는 없다. 그것은 이전의 사실을, 그리고 세계의 합리적 구축을 전제로 하는 노력을 참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적 정의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정의항이 피정의항에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원의 정의(정의항)는 원(피정의항)에 일치한다. 왜냐하면 원을 창조한 것이 바로 원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원이라는 것을 하나의 평면에서 중심이라 불리는 고정점과 항상 등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이는 점의 궤적으로 이루어지는 도형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원을 창조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원은 달걀 같은 윤곽이 아니라 두 개의 고정점에서의 거리의 합이 항상 일정한 점들의 기하학적인 궤적이다. 타원은 경험적이거나 우연적인 사실이 아니라 타원에 대한 정의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험적인 정의가 하나의 사본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수학적인 정의는 하나의 원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학적 세계는 단 하나의 명료한 세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 자체에 의해 창조된 단 하나 뿐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수학자와 수학적 실재들의 관계는 조물주와 그의 피조물들과의 관계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수학은 무엇을 말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알며 말한 것이 어김없이 진실인 과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러셀도 "수학은 냉소적인 회의주의 앞에서도 끄떡없는 진리의 전당을 구축한다"라고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수학적인 활동이란 하나의 논리정연한 게임(사람들이 흔히 트럼프 게임, 혹은 체스 게임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에서의 게임) 이상의 것으로서 지적인 구조들을 밝혀내는 것인데, 그 지적인 구조들은 정신이 무동기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조직을 주재해 왔던 그런 것이다. 데카르트는 광학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의 삼각법을 이용했고,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를 설명하기 위해서 대수학을 이용했으며, 케플러는 타원의 기하학이 행성의 운행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리 마련돼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겉으로는 현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리만(Riemann)의 기하학마저도 유용한 것이다.
수학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르쳐준다. 과학은 자연 현상들간에 존재하는 관계 양상들을 극도로 정확한 언어로 번역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수(數)가 세계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보다 겸손하게 수가 세계를 번역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세계는 수에 의해 굴절되는 것이 아니라 수에 의해 유연하면서도 엄밀한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수는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충실한 통역자이다.수학은 하나의 개별 과학이라기보다는 모든 과학의 도구이자 언어이며, 이성의 에스페란토어로서 물리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이 공동으로 사용하며, 오늘날에는 초보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심리학자.사회학자.경제학자 등도 사용하기 시작한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이다. 수학적 언어는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일례로 연속 변분의 표현을 가능케 해준 17세기 미적분의 발견을 들 수 있다) 혹자는 "수학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탄생한 것은 바로 수학의 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로 현대 물리학은 17세기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등이 우주의 합리적인 구성에 수학을 이용할 생각을 가졌을 때 탄생했던 것이다. 수학적 건조물은 약속 체계의 결과인 정리의 체계이다. 수학자는 그 자신이 세운 원칙들에만 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세계와는 명백한 관련이 없는, 순수 정신의 산물인 수학자의 세계는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가장 지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무용한 세계이다. 물론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드시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수학자의 논리는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수학은 추론의 정신을 형성시켜준다. 수학이 형성시켜주는 정신은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한 개인을 보다 더 훌륭하게 추론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수학이 필요하냐 불필요하냐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라도 오늘날 고등교육에서 수학이 하나의 필수과목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직업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가 이해될 수 있다는 역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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