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봄, 그리고 또 다른 전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이름 모를 푸나무들이라 할지라도 그 경이로운 생명력 뒤에는 으레 상응하는 처절한 투쟁이 있었음을 더러 목격하고 놀라게 된다.

잔설이 아직 희끗한 앞산을 오르던 날이었다.

가파른 오르막, 그 비탈길을 비켜 손바닥 두셋 크기의 특이한 모양새의 돌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과자상자 속 프라스틱막처럼 얕은 홈도 두엇 정연히 패 있었다. 풍란이나 이끼붙여 이식시켜 볼 생각도 짐짓 했다. 이제 수석도 추상이나 생활쪽으로 옮겨간다고 했던가.

##'생명에는 처절한 투쟁이'

추상(抽象)이란 무엇인가. 상상력을 다양하게 자극해 주므로 때와 장소에 따라서 의미와 느낌이 달라지고 오래 보아도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 자기 나름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이거나 나름의 마음 한켠에서 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런 공간, 아니던가.

이윽고 그 돌을 들어내는 순간, 전혀 예견치 못한 여리디 여린 오오, 한 생명, 새 싹이 돋아나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자신의 정수리로 수없이 돌 밑바닥을 드리박다가 그만 지쳐 잠시 앉아 있으면서도 허옇게 웃고 있는 듯한, 그래서 옆으로 뻗어가던 한 줄기 윗 부위는 이미 긁힌 상처자국마저 선연히 드러나 있었다.

서둘러 본디대로 얹어놓은 다음, 한 동안 왠지 찡한 숙연함에 함께 퍼질러 앉아 있었다.

##돌밑에도 새싹은 움트는데…

이와 같은 감동을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겪는다.

처음 심어 본 옥잠화가 자줏빛 고 작은 꽃나팔을 묻고있을 무렵, 어느 틈새 비집고 날아들어 온 벌 한 마리와 더불어 무딘 내 감성을 일깨워 동시 한 편을 쓰게 했던 그런 옥잠화도 늦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꽃대궁도 썩어가더니 영 볼품없이, 또 형체도 없이 주저앉고 만다.

'그만 죽었구나!' 싶었다. 애석한 마음을 누르듯 다른 분을 그 위에다 포개어 놓고는 까마득히 잊어 왔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왔어도.

그랬다. 그날도 아무 생각없이 포개어 놓은 윗 분을 드러내는 순간 허옇게 산발한, 몸 또한 으깨어져, 그야말로 처연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생명력 앞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둔했던 내 생각의 뒤통수나 그 무엇으로 둔탁하게 맞으면서….

이런 전이(轉移)의 감정이 서려 있는 베란다를 한동안 서성이며 어린 꿈나무들을 떠올려 봤다.

##남루한 권위에 연연했다니

어쩌면 짓누른 '돌'이었거나 마냥 지레 짐작의 '옥잠화분' 같았을 잘못된 인식에 휩싸여 오지는 않았던가.

또 '창의력 교육' 운운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때묻은 울타리는 무척이나 걷기를 저어 하면서, 그리고는 '물렀거라, 쉬이!'하며 마치 원님 행차에 나팔 불고 지나가듯 그 남루한 권위 또한 씁쓸하게 가슴을 파고든적도, 그로 인해 다툰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로이드는 "우리 인간의 대부분의 문제는 자기 자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고 참다운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도 이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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