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복칼럼-절의의 정치인

우리에게는 선거 증후군(症候群)이라는 것이 있다. 소위 말하는 '선거병'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으레 도지는 병이다. 그 중의 하나가 신당 창당이다. 마치 온 몸에 부스럼 번지듯 선거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여기 저기서 이런 저런 구호를 외치며 당을 만든다. 대통령도 만들고 낙천의원도 만들고 시중의 잡배도 만든다.

잘 돌아가던 당도 하루 아침에 깨부셔서는 새 당 간판을 건다. 심지어는 대통령을 만들 정도로 조직이 잘 짜여진 정당도 자고 일어나면 다른 당이 된다. 그 당이 바로 그 당인데도 선거 때만 되면 반드시 간판을 바꾸어 단다. 흔히 말하는대로 위장 간판이다. 주인도 그 주인이고 상품도 그 상품인데도 가게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전과는 뭔가 색다르게 보여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해서다.

국회의원도 공천에서만 떨어지면 떨어진 사람들끼리 하루 아침에 동지가 되어 당을 만든다. 전에는 불공대천지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사이도 갑자기 백년지기가 된다. 그리고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손을 잡고 다짐을 하고 당을 만든다. 무슨 무슨 운동을 하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그 운동을 내팽개치고 당을 만든다. 당을 만들지 못하면 지금까지 규탄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이 만든 당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의기가 투합했던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고성대호(高聲大呼)를 한다. 말이 대호(大呼)이지 제 마음대로 소리를 지르는 방가(放歌)나 다름없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당들이 선거가 끝나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싹 사라지는 것이다. 폭풍 뒤 맑은 날씨처럼 잡당(雜黨)이란 잡당은 다 없어지고 몇 개의 큰 당 속으로 다시 헤쳐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신당 만드는 것을 선거 증후군이라 하고, 증후군이 언제나 그렇듯 다음 시기가 오기까지는 병 증세를 멈추는 것이다.

우리의 정당사(政黨史)는 이같은 선거 증후군의 정당사다. 말이 정당사지 정당의 역사라고 할 만큼 내세울 정당이 없다. 민주주의 역사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넘는데도 그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당의 역사는 2, 3년이 고작이다. 심지어는 정국을 주도하는 여당도 어제 그제 만들어졌다. 선거때가 되니 그 선거 증후군이 발병해서 급기야 만들어진 것이다. 그보다 더 늦게 낙천자들이 모여 또 하나 정당을 만든다니 그야말로 갓 태어나는 신생아(新生兒)다. 그 신생아가 세상을 보기 무섭게 모두 내 밑으로 모여라고 기치를 드니 신생아가 아니라 노생아(老生兒)다.옛부터 절의(節義)를 지키지 못함은 본색(本色)이 드러나기 때문이라 했다. 하나의 정치(精緻)된 이념을 계속 고수하고, 하나의 정당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을 '절의'라 한다. 이 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환경의 변화라든지 시대의 변화 혹은 주위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먼저 그 사람의 본성(本性) 자체가 '절의'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본성이 이해득실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색깔을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의 '본색'이어서 절의라는 것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역사와 정당의 역사가 대개 일치하는 것은 '절의의 정치인'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정도를 넘어 대다수 정치인은 '절의의 정치인'이다. 우리보다 민주주의를 늦게 시작한 일본도 사회당·자민당·공산당의 역사가 모두 50년을 넘고 있다. 우리처럼 여당이 어제 그제 만들어진 나라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거기에 국회의원을 몇 선(選)이나 한 사람들이 낙천했다고 모여서 다시 정당을 만드는 나라는 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나라다.

이 모두 '절의의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는 것이 모두 '본색'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선비연하고 어떤 사람은 지사연 하고 어떤 사람은 투사연하면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그 본색을 심판하는 것은 오직 유권자 뿐이다.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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