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일동포 100년-(20)해외한민족 대표자 회의

1987년 가을, 동서냉전의 붕괴 시기와 함께 해외 동포사회를 총망라한 최초의 연대 조직으로서 '해외 한민족 대표자 회의'가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당시 민단의 박병헌 단장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 살고있는 한민족의 지원을 결집시키기 위해 교민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통의 관심사를 협의하자는 내용의 제의서를 주재 공관의 협조를 얻어 각국 교민조직앞으로 전달했다.그후 전세계 교민사회의 공감을 얻어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한민족 대표자 회의가 '조국의 평화 통일과 21세기를 전망한 해외동포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도쿄에서 개최됐다.

1987년 11월16일부터 이틀간 열린 이 회의에는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31개국에서 303명의 대표들이 참가, 각각의 분과위원회(평화통일, 지위향상, 문화교류, 경제산업, 특별분과)를 구성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 결과로 '해외 한민족 협의회'가 설치됐고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각국의 정보수집과 교환을 위한 기구를 설치키로 했다. 또한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한 홍보활동을 추진하고 수출증진과 한국상품 판매촉진에 합의했다.

본국 정부에 대해서는 인권.재산권 등의 보호조치, 민족교육 진흥을 위한 보조와 교육관 파견 등을 요망했다. 통일과 관련해서 남북한 최고책임자회의의 조기 개최와 군사분계선 내에 '만남의 공원'을 설치할 것을 제의했다.

'100년 해외 한민족사상 처음으로 31개국 303명의 대표자가 이곳 동경에 모여...'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동경선언'을 채택한 한민족 대표자회의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해외동포간의 깊은 연대를 확인하고 폐막했다.

해외 동포사회를 망라한 최초의 유대조직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표자회의는 민단의 주도하에 결성돼 재일동포들의 자긍심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후 1989년에는 두번째로 워싱턴에서 해외 한민족대표자 회의가 열렸고 계속해서 2년간격으로 베를린과 서울로 장소를 옮겨가며 행사는 이어졌다.

실질적으로 이 모임은 구 공산권 대표들의 참석 지원, LA 흑인폭동시 피해 동포들에 대한 지원, 특히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동포들을 위한 지원사업에서는 큰 역할을 했다.

朴淳國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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