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싱가포르의 한 신문은 아시아의 주요 12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여 아시아에서 외국인들이 사업하기 힘든 나라로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를 꼽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배타적 민족성 때문이라 했다.
우리 민족의 배타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라느니, 국산품 애용이라면 동네 강아지까지 나선다느니 하는 외국인들의 비아냥거리는 우스갯소리 또한 이미 익숙해 있다. 우리 시장을 공략하고자 진출했다가 죽을 쑤고는 철수해 버린 유수의 외국기업들이 한 둘이 아니고 보면 그네들 심정도 헤아릴 법 하다.
며칠 전 반상(盤上)의 혁명이 일어났다. 바둑 집시라 불리는 중국의 이류 기사 루이나이웨이가 바둑계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국수(國手)의 자리에 올랐다. 최고의 고수들에게만 정상을 허락한 국수위(國手位)이기에 그 상징성이 여간 크지 않을 뿐더라 바둑 외적인 면에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민단체에 의해 낙천자 명단이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혁명적 사건이라고 했었지만, 결코 이에 못잖은 사건이다. 그녀의 실력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배타적 민족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으로서, 그것도 남녀가 유별(?)한 이 땅에서 여자의 신분으로 공식적인 일인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어느 분야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던가.
혹자들은 바둑을 고답적 오락이라 하여 기계(棋界) 또한 보수적인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데, 그들의 유유하고도 넉넉한 품이 애기가(愛棋家)의 한 사람으로서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
반상에서 천하를 읽는다고 했던가. 이번 혁명에서 사회적 변화의 전조를 느낀다면 성급한 기대일까. 권오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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