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그래도 개혁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상도동을 방문, 힘을 보태달라고 YS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대사건이었다.

평소 3김 청산을 부르짖던 이 총재의 상도동 방문은 묵은 정치의 상징으로 벼랑끝에 몰린 YS에게 다시 현실정치에 참여할 활력을 불어넣는 면죄부이자 정치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상도동행(行)을 미상불 16대 국회의 정치개혁을 좌절시킨 대사건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총재는 현실 정치에서 3김 중심의 정치구도를 바꾸고 부패 정치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代案)으로 떠오른 사람이다.

법대로 대쪽같은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상에 오른 정치인이기에, 또 석패했을망정 1천만표를 얻은 가장 강력한 차세대 지도자이기에, 구태의연한 현실 정치에 식상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내세운 3김청산의 개혁의지에 기대를 걸었던게 사실이다."상도동行은 정치개혁 포기 선언"

그런데 이처럼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이 총재가 "미숙한 탓에 공천을 잘못했다"며 때묻은 YS에게 한발 물러서고 있으니 정치 개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야당총재가 선거 전략상 상도동을 한번 방문한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대수롭잖게 여긴다.

그러나 이 총재가 상도동을 방문한 순간 YS는 퇴출대상의 때묻은 정치인에서 야당총재가 도움을 청할만큼 권위있는 최고의 원로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 총재의 상도동 방문을 고비로 개혁정치를 주창하는 목소리는 여야 어느쪽 진영에서도 쑥 들어갔다. 대신에 '퇴출'당한 구 정치인들의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는 사실은 이 총재의 YS 방문을 계기로 정치개혁의지가 여야 모두에게서 송두리째 퇴색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 틀림없을 것 같다.

이번 총선의 화두(話頭)는 누가 뭐래도 '정치개혁'이며 이것이 이번 총선에서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글의 맨 앞줄에서부터 이총재의 상도동 방문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지나치리만큼 집요하게 강조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총재의 서투른 '개혁공천'으로 16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없을것만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다.권력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인치(人治)의 정치, 국리민복보다 당리당략에 치우치는 보스정치, 정치자금의 단맛을 아직도 팽개치지 못하는 부패정치는 이제 청산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다.

또 지금같은 국제경쟁시대에는 권력자의 눈에 벗어났다해서 검찰이 공권력을 발동하고 국세청이 세무사찰을 하는 그런 막가는 정치가 아니라 법에 따라 다스리는 법치(法治)가 돼야한다는 것이 이땅의 보통사람들이 갖는 한결같은 소망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정치개혁을 기대하는 국민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개혁의 흉내나마 내는 듯 하더니 급기야 그마저 팽개친 채 제자리 지키기와 제 당파 의석 불리기에 핏발을 세우는 모습이다.

게다가 제4의 신당마저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아무리 봐도 정치개혁은 커녕 우리정치가 과거의 이합집산의 정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 같으니 답답하다.

때묻은 정치인 퇴출 국민힘으로

되풀이컨대 정치개혁은 이 나라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현안이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도 이처럼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때묻은 정치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충성을 맹세하는 저질 의원이나 함량미달의 의원들에게 공천장을 안겨준 이회창 총재의 독선이 '개혁공천'의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이것이 또한 노회한 중진의원들에게 반격할 빌미를 줌으로써 개혁이 엉망이 돼버린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총재의 리더십이 어떻느니, 지도자로서의 그릇이 어떻느니 여러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 총재의 리더십을 나무라기보다 정치개혁이란 과제 자체가 지극히 어렵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사실 20~30년이상 정치를 하며 뿌리를 내린 정치 고수(高手)들이 초선에 불과한 이 총재의 '퇴출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리라고 믿었다면 대단한 착각 아닐까.

결국 이번에 한나라당이 벌인 개혁공천의 해프닝을 통해 우리들은 "때묻은 정치인을 퇴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권자인 국민의 단합된 힘뿐"이라는 교훈을 새삼 확인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주권자인 우리가 발벗고 나서서라도 정치개혁의 실마리를 찾아야 정치가 살고 나라가 살아날 것임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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