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거룩한 희생

뇌사를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여기저기서 장기를 기증하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월27일 동산병원에서 사고로 죽은 고모씨의 장기적출.이식 수술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가족을 잃은 고통만도 엄청날텐데 기증이라는 어려운 단안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으랴.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마는, 장기 기증이라는 거룩하고 엄숙한 과정이 바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겟세마네 동산을 오르신 희생의 가르침을 사람의 몸으로 실천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될까.

자신도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 병자임에 불구하고 죽은 아들의 장기를 받아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미의 도리가 아니라며 아들의 신장을 받으라는 주위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한 어머니의 뼈아픈 고백은 자식을 잃은 슬픔의 강도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다자이 오사무의 유일하게 희망적인 소설 '판도라 상자'에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죽음에 의하여 완성이 된다' 장기 기증 운동이 널리 확산되어 고통받는 병자들이 한시바삐 새삶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하느니만큼 참 이율배반적인 일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중이 복잡하다. 혹자는 이왕 죽은 목숨...운운할지 모르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삼자의 객관성에 따른 판단이고, 정작 일을 당한 당사자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현듯 죽음을 맞이한 이의 장기 기증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죽음에 의해 완성된 인간의 실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희생임을 감히 누가 부정하랴.

장정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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