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영국 정부가 16개월 간 억류해 온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를 2일 본국으로 돌려 보냄에 따라, 이 반인륜 범죄자에 대한 법적· 역사적 심판은 칠레 정부와 그 국민들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남미의 대표적 철권 통치자인 피노체트는 1973년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성향의 민주정부였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좌에 올랐었다. 초기에는 사회 혼란을 해결해 국민적 지지를 얻었으나, 그후 권력기반이 다져지자 경제 건설과 반공을 명분으로 좌파 및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칠레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그 후 1990년까지 18년간 피노체트 치하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은 모두 3천197명에 달한다.
피노체트는 1988년 집권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함으로써 권좌를 물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89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돼 다음해 3월 취임함으로써, 칠레는 18년만에 민정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피노체트는 권력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퇴임 후에도 8년간이나 군 통수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1998년 종신 상원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을 확보한 뒤에야 군 통수권자 직을 사임했다. 권력만이 과거의 죄악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
하지만 역사의 심판은 뜻밖의 곳에서 시작됐다. 1998년 그가 신병 치료를 위해 영국에 들렀을 때, 스페인의 발타시르 가르손 판사가 '반인륜 범죄' 혐의로 전격 소환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희생자 중에 스페인 사람도 포함돼 있다는 이유 때문.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정부도 피노체트의 소환을 요구했다.
그의 면책특권 인정 및 소환· 석방을 두고 국제 인권단체와 피노체트 지지자 사이에 결렬한 대립이 16개월간 진행되면서, 영국 정부의 최종 결정이 관심을 모았다. 칠레 정부는 국가 주권 차원에서 연금 중인 피노체트가 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영국은 "피노체트가 재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는 이유를 들어 2일 석방을 선언, 칠레로 돌려 보냈다. 의료진의 건강보고서에 따르면 피노체트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데다 뇌가 손상돼, 자신의 집권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영국의 결정에 대해, 피노체트 지지자들은 환영한 반면, 국제 인권단체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전직 국가원수를 국제사회가 처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재자 피노체트는 이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 것일까. 칠레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과거와 너무 달라져 아직 낙관은 이르다. 칠레에서는 피해자 유족과 노동자 단체 등에서 그를 상대로 모두 59건의 소송을 이미 제기해 둔 상태. 또 오는 11일 리카르도 라고스 신임 칠레 대통령이 취임, 27년만에 사회주의 정권이 재탄생함으로써 피노체트 처벌에 대한 여론이 어느때 보다 높다. 칠레 산티아고 법원의 구스만 타피아 판사는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종신 상원의원으로서 누리는 면책특권을 박탈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우파세력의 반발을 물리치고, 칠레정부와 국민들이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인권'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전세계의 이목이 한 독재자의 운명에 집중되고 있다.
石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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