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디오 아티스트 故 박현기 선생 49재

3·1절인 지난 1일 오전11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백남준 비디오아트전이 세계적 주목을 끌며 성황을 이루고 있을 무렵 지구 반대편 한국의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는 불꽃같은 예술 인생을 살다간 비디오아티스트 고(故) 박현기 선생의 49재가 열리고 있었다. 봄 기운을 느끼게 하는 따스한 햇살이 산사를 감싸고 산새가 지저귀며 이따금 고즈넉한 분위기를 깰뿐 침묵과 마른 기침속에서 한 예술가를 떠나보냈다. 이 자리에는 지난 1970년대부터 고인과 함께 대구지역에 현대미술의 새 흐름을 불어넣었던 최병소씨를 비롯, 지역의 현대미술가들과 일본 오사카의 행위예술가이며 고인의 오랜 친구인 오쿠보 에이지(大久保 英治·58)씨 등 생전에 그와 친분을 나누었고 존경했던 동료 미술인들이 나와 그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병소씨는 "백남준 선생이 재미있는 비디오예술을 추구했다면, 박 선생은 진지함으로 가득찬 비디오예술을 추구했습니다. 그가 한창 예술에 정진하며 의욕을 불태울 시기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돼 너무나 안타깝습니다"라며 눈자위를 훔쳤다.

지난 1월13일 58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 박현기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 백남준씨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전인 70년대 중반부터 이미 비디오작업을 시작, 한국 현대미술계에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지난 1998년 문예진흥원 선정 한국미술기획초대전의 초대작가로 뽑혀 '우울한 식탁'시리즈, '만다라' 등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지난해 4월 서울 박영덕 화랑에서 '현현(顯現)'을 주제로 한 작품전, 이후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비디오 특별전, 일본 가마쿠라화랑 초대전 등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갈망했던 박씨는 작품 전반을 통해 현란한 기술을 배제하고 동양적 정서표현에 몰두했었다.

그는 가고 없으나 그가 남긴 예술혼은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는 29일 개막되는 제3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가로 선정돼 그동안 준비해왔던 평면과 영상 작품은 그의 아들 박성범(조각가·33)씨와 제자들이 마무리, 20일쯤 완성될 예정이며 그와 공동작업을 추진했던 오쿠보 에이지씨도 그의 아들과 함께 한·일 양국과 연관된 행위예술을 준비중이다. 이와 함께 대구 현대미술계 일각에서는 시간을 두고 그의 유작전 개최와 추모위원회 결성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知奭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