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한국인과 조선족 사이

지난 달 열흘간의 베이징(北京) 현지 학술조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납치사건 관련 기사를 보며 무사귀환에 안도하였다. 그 후 연일 헤드라인 뉴스로 끔찍한 내용들이 보도되고 있어 벌써부터 올 여름방학때 중국에 갈 일을 걱정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 원인을 한국사람들의 행동이 방정치 못하기 때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대통령까지도 중국의 현지인들이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현금 많이 가지고 다니고 돈 잘 쓰는 사람이 한국인 뿐일까?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만 여자접대부 있는 가라오케에 가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들과 유학생들 중 유독 중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우리와 한 피를 나눈 조선족 동포에게 당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선족은 엄연한 중국인

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발생은 한(韓)민족과 조선족이 서로 상대방을 막연히 감정적으로 연관지으며 유익한 경우에만 동포가 돼주기를 바라는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조선족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중국인이며, 이미 우리 한민족의 한국인이 아니다. 19세기말부터 만주지역에 이주하여 중국인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 이래, 특히 사회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중국에 동화되어 한어(漢語)를 모국어로 조선어를 민족언어로 하며 살아가는 중국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과 조선족은 한 핏줄이라는, 이제는 희석되어 가늘어져 버린 끈에 매달려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만을 바라고 서로를 필요로 하였다. 한국인은 큰 수고들이지 않고 조선족을 매개로 중국에 진출하여 돈을 벌어보겠다고 생각하고, 조선족은 잘 사는 형제 덕분에 한 밑천 잡아보겠다고 손을 잡았다.

그러나 조선족은 한국인과 상대하면서 곧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 같이 동포심리에서 비롯된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면서 한국기업가에 적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기업가는 동족이라 자신의 편에 서서 일을 해줄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가 속속 무너지면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즉 각기 상이한 역사적 배경 아래 살아온 한민족과 조선족의 어설픈 동포의식이 오히려 반목과 갈등을 조장한 것이다.

지난 1993년 1년간 중국에 체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노다지를 캐보겠다고 다녀갔다. 그때마다 나는 "조선족과는 사업을 하지말고, 그냥 친구로만 하시면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는 조선족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추상적인 동포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형제·친구간에는 돈거래를 삼가야 한다는 한국적 원칙이라도 지키도록 조언함으로써 후환을 줄여보겠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돈이 아니라 친구로 대우

나의 이런 판단은 한.중관계가 긴밀해지고 경제교류가 확대되면서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몇 년간 주위에서 발생한 경험들로 확신케 됐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주제넘은 주문을 해보고자 한다. 우선 기업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중국어를 배우든지, 아니면 한국에서 중국어 통역을 채용해 중국에 진출할 것이며, 조선족의 싼 노동력으로 쉽게 돈을 벌어보겠다는 안이한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가들은 모국어 할 줄 아는 현지교포 없이도 모두 사업 잘하고 있으니까. 또한 기업가.유학생 등 중국과 관련있는 사람들 모두 "중국인은 사귀기는 힘들어도 사귀고 나면 영원한 친구"라는 말을 깊이 새겨 중국인인 조선족을 돈이 아닌 마음으로 진정한 친구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을 것이다. 즉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진정한 동포로 대우하든지 아니면 완전히 중국인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하여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하여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진정시키고 둘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조수성(계명대 교수 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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