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조기유학 자유화 전제조건

정부의 조기유학 자유화 조치는 세계화·자율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비추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교육적 여건과 풍토를 감안하면 그 폐단과 부작용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다.

영재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공교육 풍토와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을 염두에 둔다면 조기유학 바람은 우리 교육에 대한 불신이고 반란이라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조기유학은 이제 특정계층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대되고 있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동안 제도적 규제 때문에 싫든 좋든 국내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더 나은 교육을 택하는 현상이라고 봐야만 할 것이다.

국제화 시대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교육환경을 찾아가는 '선택'은 자연스러운 추세다. 국가적으로도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막거나 제한할 명분이 없어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조기유학의 이상과 현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조기유학 정책이 실패했던 요인은 일부 부유층의 과열된 교육열과 그릇된 교육관 때문이었다. 조기에 유학간 많은 학생들이 외국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조기유학이 완전 자유화되면 사설학원의 난립, 학교교육의 공동화, 계층간의 위화감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조기유학의 바람직한 정착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조기유학을 지도·관리·평가·지원할 수 있는 전담기구가 설치돼 제구실을 해야 할 것이며, 무분별한 유학을 자제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확대도 따라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조기유학의 수요를 국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교육의 내실화를 꾀해야 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과 능력을 반영할 교육체제를 마련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이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계속되는 한 조기유학 열풍은 갈수록 늘어날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중등교육체제를 개선하는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안에서는 묶어놓고 밖에서만 풀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확대해줘야 한다. 2002년도 대학입시부터 무시험전형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방침이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어 일선학교의 자율화·다양화·특성화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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