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남대 박홍규 교수 日 '반 고흐'전 관람기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가정도, 직장도, 연인도, 친구도 없이 굶어죽다시피하며 그림만을 그리다 결국 미쳐 죽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다. 그는 미술대학은커녕, 미술학원도 다니지 못했고, 초중학교 4년 정도 다닌 학력 밖에 없다. 그리고 화랑과 서점 점원, 임시 교사와 전도사 등으로 살다가 나이 30이 다되어 빈민을 위해 그림을 그리다 37세에 죽었다.

평생 한 점의 그림 밖에 못 팔아 정말 굶주렸는데 지금은 세계 최고가로 팔린다니. 빈민이 빈민을 위해 빈민의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은 세계 최고가라니. 아, 이 그림들을 우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보아야 하늘의 반 고흐가 기뻐할텐데. 그의 작품은 볼 때마다 가슴을 저며온다. 아니 불꽃처럼 우리의 마음을 불태운다.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그렸다. 그렇게 불태운 삶을 우리에게 그림으로 남겼다. 반 고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있다. 그의 슬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삶의 고통은 예술로 승화된다. 그래서 반 고흐다. '내 친구 빈센트'다

지난 달 1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전시회를 보고 왔다. 이번 전시회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의 작품은 세계 도처의 미술관에 있으나 가장 많이 소장된 곳이 그의 조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다. 후자는 유명한 기업인이었던 뮐러 미망인이 수집하여 국가에 기증한 것인데, 세계 도처에 이런 기증 미술품과 미술관이 많다. 없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아니 한두엇 있지만 탈세방법으로 흉내만 낸 것일뿐 그 양이나 질이 일본것들에도 휠씬 미치지 못한다. 돈 벌어서 다 뭣하나. 나라도 기업도 문화에 관심이 없으니 국민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이래서야 문화의 시대라는 2000년에 어떻게 살거나.

전시된 진품 74점은 물론 반 고흐 작품의 전부가 아니나, 중요한 초기 작품부터 말기 작품까지 골고루 보여주는 알찬 것들이었다. 몇 번을 보아도 좋았다. 뮐러 미술관에서 보는 맛과 또 달랐다. 게다가 일본인답게 100% 서비스를 했다. 전시실 곳곳의 친절한 해설, 상세한 도록, 비디오영상물까지 완비됐다. 특히 너무나도 쉽고 재미있게 꾸민 팸플릿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엄숙한 팸플릿과는 너무나 달랐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빈민들에 대한 스케치와 서민의 초상화들이 많았다. 무려 44점이나 됐다. 파리, 아를르, 상레미, 오베르시대의 그림들이다. 특히 아를르시대 이웃이었던 우체부 롤랑과 그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과 '달이 뜨는 저녁 풍경'등 종교적인 신비함까지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초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풍경은 자연에 대한 경건으로 가득하여 옷깃을 여미게 한다. 왜 우리의 예술에는 이런 감동이 없나전시장에 들어서며 먼저 놀란 것은 1천5백만명이 관람했다는 사실이었다. 진품 74점을 가져와서 전시한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니, 역시 일본은 '있다'. 우리는 언제 7점이라도 가져올 수 있나. 만일 대구에서 그런 전시회가 열리면 그 100분의 1인 15만명이라도 볼까? 아니 1천분의 1이라도 볼까?

전시회가 열린 후쿠오카는 인구가 대구의 반도 안된다. 그런데도 문화는 대구의 수백배 규모이다. 미술이나 음악은커녕 영화조차 대구에서는 안된다. 물론 벗거나 싸우는 영화는 되지만 괜찮은 영화는 아예 상영조차 못한다.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이젠 이래서는 안된다. 21세기는 정신의 시대, 창조의 시대, 문화의 시대라고들 한다. 대구도 이젠 그런 풍요한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명실공히 문화와 교육의 도시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아름답게 가꾸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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