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음악 없는 초등학교 음악수업

힙합 바지를 입고 알아듣기도 힘든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며 테크노를 추는 초등학생. 이들과 고향의 봄, 반달, 오빠생각 같은 동요는 얼마나 어울릴까.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와 음악 수업이 학생들의 정서에 뒤처진다는 지적은 이미 묵은 얘기. 그러나 문제는 세월이 흘러도 학생들의 불만과 교사들이 수업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전하다는데 있다.

▲학생과 학부모 생각

새 학년 교과서를 받아든 초등학생들. 어느 과목이든 공부라면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렵지만 음악 교과서를 보고도 얼굴을 찌푸린다. 음악 수업 역시 전보다 크게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란 반응들이다.

한 초등학생이 인터넷에 띄운 글. "새 음악교과서를 받았는데 노래들이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사를 읽어보니 더욱 그렇다. 노래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든다. 올해도 음악시간이 별로 재미없을 것 같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듣는 일은 학예발표회 때나 합창단 공연 등이 고작. 어쩌다 가족끼리 노래방에 가서 가곡을 부르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상업적인데다 가사가 별로 교육적이지 못한 대중가요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조차 없다는게 더 답답하다.

김정남(36·여)씨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음악책을 들고 집에서 노래 부르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애들은 대중가요에만 넋을 잃고 있다"면서 "학교 음악교육이 아이들의 정서를 올바로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교사들 경험

음악시간에 아이들에게 직접 노래를 가르치는 초등교사들의 반응은 물론 각양각색이지만 "학교에 노래 부르는 문화가 되어 있다"는 부분에는 공감대가 크다.

대구 월곡초교 임성무 교사는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가 옛날 노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3시간 정도 걸려 억지로 동요 한 곡을 가르치면 실제 부르는 것은 대여섯번. 이에 비해 가요는 저희들이 좋아 수십번을 듣고 따라부르는데 과연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동요 부르는 모습을 찾기가 쉽겠느냐는 것이다. 임 교사는 "개인적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동요를 모은 테이프를 만들어 듣고 외워부르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과서에 대해서는 일부 만족. 전통적인 서정 동요는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노래이고 교과서가 바뀔 때 추가된 창작동요도 노랫말이나 선율이 괜찮다는 것. '이 정도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배우고 따라부를 수 있겠다' 싶은 노래도 몇곡씩 보인다는 의견들이다.

▲교육청 설명

대구시 교육청 방경곤 장학사는 "교과서 개편주기가 5년으로 길다 보니 사회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음악 역시 마찬가지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십중팔구 대중가요일 수밖에 없지만 요즘처럼 대중적·상업적 추세가 만연하는 현실에서는 마지막 보루인 학교 교육이라도 우리 고유의 서정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초등 1, 2학년부터 적용되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전통음악을 35%까지 확대하는 등 변화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 비판

음악인들이 교과서를 보는 시각은 대부분 우려로 가득하다. 창조력과 상상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중시되고 있으나 교육에서는 이를 역행하는 부분이 많다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작곡가 강석희씨는 월간 음악전문잡지 '객석'과의 좌담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교과서에는 가곡이 많이 들어 있지만 아이들은 진부해서 부르지 않는다. 요즘 가요 중에는 저질도 아니고 꿈을 실은 것도 많다. 교과서를 편찬하는 친구들에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곡을 좀 넣으라고 하면 교육부 정책 때문에 몇십퍼센트는 반드시 가곡을 넣는다고 한다. 우리 생활음악의 70퍼센트가 대중음악인데 무조건 안된다라고 교육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으로는 결코 행복한 음악시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동요작곡가 고승하씨의 견해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고씨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 지역별로 어린이 노래단 '아름나라'를 조직, 어린이 노래운동을 펼쳐온 인물.

그는 교과서에 최근의 경쾌한 창작동요들이 추가됐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근본원인은 어른이 생각하는 정서를 교과서를 통해 강요하기 때문. 아이들의 삶과 생활은 외면한 채 꿈, 하늘, 무지개 따위의 동심천사주의와 백치미만 추구해서는 대중가요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창작동요가 좋다거나 서정적인 노래가 중요하다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생각도 결국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어른의 눈에서 보는데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것.

고씨는 선율의 예쁨이나 말의 고움에 치우치지 말고 보통 아이들의 정서와 생활을 노래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음악교육을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글을 주목하고 여기에 곡을 붙여 보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 결국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교육의 출발점이라는 명제는 음악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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