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이보다 더 나쁠수는 없다

최근 TV 사극드라마 '왕과 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반전의 핵심은 '금삼(비단 적삼)의 피'.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을때 입은 비단옷이 문제의 발단이다. 연산군은 어머니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며 이에 대한 한풀이로 대학살의 전주곡을 울리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도 해묵은 '금삼'의 유령이 광풍처럼 몰아닥치고 있다. '지역 감정'이란 망령이 무덤속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위세를 떨치고 있다. 누구도 이처럼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가 "김대중대통령이 후보로 출마한 71년 대통령선거때부터 영호남 지역감정이 본격화됐다"며 김 대통령을 '지역감정의 원조'로 지목하면서 지역감정 논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지역 감정'논쟁의 절정은 민국당 김광일 의원의 부산 발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 의원은 "신당(민국당)이 실패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김 의원은 "내 연설에는 YS의 축사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구미지구당 대회에서 "지역감정 덕택에 옆동네와 동업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야말로 지역감정의 괴수(魁首)"라는 원색적인 말로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했다.같은 민국당의 김윤환 최고위원은 대구에서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가 합쳐 영남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며 지역주의를 강조했다.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발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충청도 곁불'론을 비롯, 이인제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 등 각당의 지도자급 인사 등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김광일 의원이 '괴수'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등 '지역감정'논쟁의 수위가 어떻게 될지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으나 민국당의 한 관계자가 언급했듯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욕을 먹어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면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7일에는 그동안 침묵하던 YS마저 DJ를 겨냥 '싹쓸이 인사'론을 들먹여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되고 있다.

연산군의 광증은 자신의 파멸을 불러 결국 '중종 반정'으로 귀착됐다.

현금에 벌어지고 있는 망국적 '지역감정'망령의 귀착점은 그렇다면 어디인가.

원시적이고 저급한 '본능'에 기대는 이같은 비생산적인 논쟁은 가뜩이나 작은 국토를 발기발기 찢어 전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밖에 안된다.

중종반정은 포악한 왕을 쫓아 내긴했지만 결국 권력내부의 힘의 이동에 그쳐 일면 민중들의 삶과 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번 4.13 총선은 시민들의 힘으로 1인 보스 체제에 있는 권력의 무게 중심을 시민 쪽으로 옮기는 기회의 장이다. 문제는 시민의 힘이다.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연산군으로 상징되는 전근대적인 왕도의 유산과 같은 3김과 그 아류정치를 털어버리는 대역사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정치 보스들과 그 추종자들의 연출하는 '꼭두각시' 놀음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제시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당과 개별 후보는 물론 때가 묻은 구시대적 정치인들에 대해선 엄혹한 심판을 내리는 '투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을 뽑는 데 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혁명만이 궁극적으로 한국 정치의 최대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몸통 정치''패거리 정치'를 혁파할 수 있는 거대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한국 정치의 희망은 국민(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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