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西歐) 열강의 근대사는 어떤 의미에서 후진 미개발국에 대한 침략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제국은 앞다투어 후진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는 한편 그 나라의 국보를 저네들 나라로 실어날랐다.
이들의 약탈이 오죽 심했으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제국 박물관을 두고 '해적들의 전리품 전시장'이라고까지 꼬집었을까. 서구 열강의 이처럼 부끄러운 약탈행위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문화재는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유네스코가 '문화재 불법반출 금지협정'을 제정한 것이나 유엔이 전쟁중 약탈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의결한 것도 그 결과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약탈한 문화재를 되돌려주고 미국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의 리디아문화재 363점을 터키에 돌려준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도 2차대전때 약탈한 문화재를 군말 않고 프랑스에 돌려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문화대국을 자처하는 프랑스만은 문화재 반환에 대해 너무나 이기적이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불(訪佛)을 계기로 행여나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의 반환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프랑스측이 기껏 "외규장각 도서문제를 빨리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의례적 수준으로 얼버무리는 무성의에 대해 새삼 분노하고 있다.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우고 5천점이 넘는 문화재를 유실시킨 프랑스가 진정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이럴수가 있을까. 외규장각 도서는 사도세자 혜빈책례도감의궤(思悼世子 惠嬪冊禮都監儀軌·파리국립도서관 2682)와 옥책(왕이나 왕비책봉때 존호를 새긴 옥대) 등 191종 297점에 이르는 중요한 도서들이다. 특히 이 도서들이 중요한 것은 국내에 없는 희귀본이 50여종이나 되는데다 우리 근·현대사의 초석이 되는 정조(正祖)연대의 왕실 기록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우리측이 보내는 고서본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규장각 도서를 '영구 임대' 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우리측이 399점을 보내겠다고 나서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는게 저간의 사정이다. 제것 만을 챙기는 프랑스의 문화대국주의에 새삼 염증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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