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서상호-본사주필)

88년 제13대 총선은 여러가지 면에서 신기원을 낳았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새로운 현상을 가져왔으며 특정지역을 특정정당이 '싹쓸이' 하는 현상도 처음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가가 뚜렷한 4당구도를 가진 것도 처음 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16대 총선도 그때와 거의 같은 양상으로 가고 있다. 부산은 대리인(?)으로 바뀐 것으로 보이고 1노(盧)는 1이(李)로 대체 되었을 뿐.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4당구조란 지역을 아지트화 한 구도인 만큼 지역감정이 설친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총선에서도 처음에는 "지역감정을 누가 일으켰느냐" 하는 책임론으로 불이 붙더니 끝내는 영남정권창출론이라는 노골적인 선동이 나왔나 하면, 대통령 보고 '지역감정의 괴수중 괴수'라는 악담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괴수라는 말은 바로 욕이다. 정치문화의 수준을 욕이나 하는 건달수준으로 낮추려는가.

그런데 88년 당시 여소야대의 4당구조를 놓고 야당정치인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마저 하늘이 만들어준 황금분할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말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당인 당시 김재순 국회의장이다. 이 분도 4당구도가 이처럼 지역감정을 악화 시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실 4당구조는 바로 3김씨의 부활을 의미한다. 대체로 호남, 영남의 두 지역, 충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4당구조는 과반수 문제 등이 있어 기본적으로 불안한 구조다. 88년의 황금분할도 결국 90년의 3당통합으로 해결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벌써 정계개편론이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정계개편이 인위적일 경우 또다시 정치적 혼란이 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지역감정 극복은 4당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불경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소리를 잡으려 마라. 부질없는 짓이다. 북을 잡으면 될 것을. 바로 지역감정이 이 북소리와 같지 않을까. 검찰도 시민단체들도 나섰다. 그러나 그 뜻은 좋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만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변덕이 심한 유령 같은 것이 지역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답은 북을 잡으러 가는 일이다. 우선은 세월이라는 약(藥)이다. 지역감정이 누구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3김씨에 의해 깊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3김씨의 동시 은퇴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3김씨의 영향을 적게 받은 20, 30대는 지역감정이 가장 약하다는 통계자료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3년은 기다려야 한다거나 나머지 1김이 3년후도 은퇴하지 않는다면 사정은 다시 복잡해 진다는 것이 문제다.

다음은 인사탕평책이다. 여당은 불균형인사가 아니고 그동안 쌓여온 불균형의 시정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다음은 지역감정 해소 운동에서 원리주의적 접근은 안된다는 것이다. 자칫 반발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편중인사는 말도 못꺼내게 한다거나 '마음의 고향' 이라든지 '강원도 며느리가 제일'하는 정도도 못하게 하는 등이다. 지역주의에는 나쁜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술밥에 배부를 수도 없고 또 세상에 100%도 없는 법이다. 지역감정 해소는 싹쓸이가 없었던 시절 정도까지만 돌려 놓으면 일단은 성공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경상도 지역에서는 "불 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지역의 지역감정만 문제삼고 불 붙히지 않아도 붙어있는 지역은 문제삼지 않느냐"하는 불만의 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전라도에서는 적어도 싹쓸이현상만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광주의 한으로 어느정도는 이해 되었으나 정권을 잡은 지금은 전혀 다르다. 동시에 경상도 지역에서도 여당의원을 배출시켜야 명분이 설 것이다. 비록 싹쓸이 현상은 없었지만 13대 총선 이후에는 DJ소속당 후보는 당선 시켜주지는 않았지 않은가. 그리고 시민단체가 벌인 선거개혁운동이 얼마나 국민에 어필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시험대이다. 유권자 의식혁명도, 혈연·지연·학연의 연(緣)의 정치가 이성적 판단의 이(理)의 정치로 바뀔 계기가 마련될 것인지도 시험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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