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이 뜨고 있다. 21세기를 예견하는 키워드로 추앙받을 정도다. 미국과 일본은 나노 기술 개발을 위해 연간 수천억원씩 쏟아붓고 있다. 마치 나노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나 되는 듯 온통 난리다. 나노의 잠재력은 상상의 수준을 넘어 자칫 허황된 거짓말로 들릴 정도다. 혈액 속을 마음대로 누비며 바이러스를 잡는 치료로봇, 환경오염 물질을 잡아내는 청소로봇, 먼지 한 개만한 크기의 첩보로봇, 머리카락 서너가닥 굵기에 백과사전을 담는 초집적 반도체. 모든 것이 나노의 꿈 속에 있다.
'나노(nano)'는 최신 기술이나 첨단 과학 분야의 이름이 아니다. 길이를 나타내는 접두사다. 고대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말. 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접두어가 '마이크로'이고, 마이크로의 1천분의 1이 나노다.
1nm(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원자 3, 4개를 이어놓은 엄청나게 짧은 길이다. 머리카락을 10만 가닥으로 나누면 지름이 1nm쯤 된다. 상상조차 안되는 극미의 세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나노 기술이다. 그리고 그 선봉엔 '탄소나노튜브'가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말하기에 앞서 '풀러렌'을 빼놓을 수 없다. 풀러렌은 탄소로 만든 축구공이다. 축구공에 붙어있는 오각형과 육각형 가죽조각의 각 꼭지점에 탄소를 대입시키면 영낙없는 풀러렌 모형이 된다. 풀러렌이 발견되기 이전 과학자들은 탄소로만 구성된 화합물, 즉 탄소 동소체(同素體)는 흑연과 다이아몬드 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85년 난데없이 탄소 축구공이 등장한 것이다. 풀러렌의 발견자들은 96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풀러렌은 진공장치 속에서 강력한 레이저를 흑연에 쪼일 때 탄소들이 흑연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결합을 이루며 만들어진다. 신소재로 각광받던 풀러렌은 알칼리 금속과 만날 경우 초전도(전기저항이 0이 되는)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과학자들로부터 특히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풀러렌의 인기를 무색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 tube)다. 지난 91년 일본전기(NEC)의 이지마 박사가 풀러렌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우연히 가늘고 긴 대롱모양의 탄소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시초. 종이에 벌집무늬를 그린 뒤 둥글게 말면 나노튜브 모형이 된다. 벌집무늬의 각 꼭지점에 탄소가 위치한다.
탄소나노튜브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발로 묶었을 경우 반도체가 되기 때문. 원래는 전기적으로 도체인 나노튜브를 밧줄형태로 묶으면 도핑을 하지 않아도 튜브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전기적 성질이 반도체로 변한다는 것. 도핑은 부도체인 실리콘 위에 소량의 불순물을 얹어 미세한 회로를 까는 작업. 도핑이 필요없다는 것은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제작공정과 비교할 때 가장 까다롭고 성가신 과정 하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또 탄소나노튜브 반도체가 개발되면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 집적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예상으론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가 1만배 이상되는 새로운 반도체가 탄생할 날도 머지않았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꿈의 반도체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과학기술부가 2000년 중점 개혁과제 발표하며 2002년까지 테라급(1메가의 100만배) 반도체를 위한 나노 소재 및 집적도 1만배의 탄소나노튜브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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