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신론(하인봉 경북대 교수 경제학)

해마다 광복절이 가까이 오면 TV방송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기록영화들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이 스러져간 젊음이에 대한 애도도 표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미가 있어 흥미롭게 보곤 한다. 전쟁기록영화의 압권 중에 하나인 것은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우는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의 기갑부대와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영국 제8군의 사하라사막에서의 전투이다. 넓고 넓은 사막이지만 어느 모래알 하나인들 병사들의 피가 묻지 않고 포연에 뒤덮히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병사들의 목숨은 고사하고 전투의 비용만을 사하라의 평당으로 따지어도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요즈음 사하라 사막을 끼고 있는 리바아정부에서 영국이나 독이국민들에게 등기비만 내면 사하라사막을 무상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하더라도 몇 명이나 응할지 의문이다. 값어치가 별로 나갈 것 같지 않은 사막의 모래땅을 얻기 위해 그토록 많은 병사들의 목숨과 돈을 헛되게 버렸을까? 사하라의 전투는 악에 대한 선의 싸움이 아니었고, 그 전투에서 이기기만 하면 아프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차지할 수 있는 먹이를 앞에 둔 한 판의 싸움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의 사회시간에 생산의 3대 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설비)이라고 배울 때 정작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원료는 어찌해서 생산의 중요 요소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목화 없이 섬유가 만들어지고, 원유 없이 정유공장이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유럽국가들에 있어서 식민지는 공짜로 생산원료를 얻을 수 있는 생산원료창고였다. 총·칼만 갖다대면 생산원료는 거저 나오는데 무엇 때문에 생산의 한 요소롤 넣어서 복잡하게 생산과정을 분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세계각국의 대표들은 한 자리에 모여 제3차 세계대전을 미연에 막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을 토론하였다. 정부간의 정치적인 갈등이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다는 반성아래 정치기구인 UN을 만들었고, 국가간의 경제적인 갈등, 아프리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영국·독일의 다툼, 아시아를 약육강식 하려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마찰이 또 다른 전쟁의 원인었다는 분석아래 경제기구는 IBRD(국제개발은행) IMF(국제통화기금) GATT(무역·관세의 일반협정) 등 세 개가 만들었다.

1950년대 미국의 일년 생산액(GNP)은 전 세계 생산액의 33%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의 생산액은 세계 생산액의 2%에 불과했다. 그러던 세계 경제판도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약진으로 1990년대에 와서는 미국의GNP는 세계 GNP의 18~19% 수준으로 뚝 떨어지고, 일본의 GNP는 세계 GNP의 11%, 심지어 한국도 세계경제에서 1%의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1997년에는 아시아의 경제규모는 세계 GNP의 34%수준으로 북미대륙의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을 합한 규모보다 더 커지게 되었다.

아시아의 대두에 미국, 유럽국가들이 상대적인 부의 박탈감, 위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진국들의 과거 경제발전이 해외식민지의 약탈에 발판을 걸치고 있었다면, 지배를 받던 저개발국들이 이제 겨우 해외수출로 먹고 살게되자 부자나라들은 여기에 다리를 걸고 싶고, 이것이 GATT를 대신한 WTO(세계무역기구)이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 시애틀에서 열린 WTO회의에 세계의 양심있는 시민단체들이 데모를 하고 회의를 저지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아시아가 겪었던 외환위기도 아시아국가들의 경제체제의 열등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해 당했던 아시아 때리기의 매였다고 볼 수도 있다. 외환위기 후 우리는 IMF앞에서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여야 살아 갈 수 있다. 미국 재무장관의 말 한마디가 IMF의 정책임을 감안하면 우리가 생각할 점이 많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난다, 긴다'하여도 부처의 손바닥에서 노는 형세이다. 이런 판국에 겨울의 매서움이 조금 지나갔다고 씀씀이가 헤퍼져서 다시 무역적자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한다니 지금 우리가 반성하여야 후손들이 당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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