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이태수 논설위원)

'유머'와 '위트'는 웃음을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능력이지만 위트는 순수한 지적 능력인데 반해 유머는 그 웃음의 대상에의 동정을 수반하는 정적인 작용까지 포함한다. 그 때문에 유머는 위트처럼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인 인생관조의 한 태도에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유머가 빚는 웃음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가가대소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연민과 사랑을 던지는 좀 복잡한 웃음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됐던 영화 '불워스'는 정치판의 위선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코미디였다. 감독과 주연을 함께 맡은 워런 비티가 랩음악에 맞춰 독설을 쏘아대는 장면들이 중심을 이뤘다. 우리 정치판에서 파문을 일으켰던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소위 '공업용 미싱' 발언과 공판장에서의 판소리 한마당은 영화 '불워스'를 연상케 했다. 유머의 밝음과 어둠을 떠올리게도 한다. 서울지법은 9일 김대통령을 향한 '공업용 미싱' 발언과 임창열 경기지사의 사생활을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의원에게 정치적 비판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지만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해온 점 등을 감안, 피선거권이 박탈될 수 있는 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묘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김 대통령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며 "거짓말을 한 만큼 입을 꿰맨다는 염라대왕이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할 것"이라고 발언, 파문을 빚었다. 이에 여당이 고소했고, 검찰은 임 지사에 대한 비방 발언까지 추가해 기소했었다. 한편 김 의원은 결심공판에서 판소리까지 읊으며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주장해왔다. '공업용 미싱' 발언의 파문이 일단 막을 내린 셈이지만, '세상이 참 각박하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지금 '너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이전투구로 너무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이번 판결 소식을 들으면서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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