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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대입논술-38차 문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영어 공용어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논의가 신문지상에서도 몇 번 다루어졌다. 다음 제시문은 영어 공용어화 문제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이다. (가), (나)를 읽고 '영어 공용어화'에 대하여 구체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논술하시오.

(가)...전략... 민족문화는 결코 불변의 고정태가 아니다. 늘 바뀌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결코 무국적의 보편주의자나 자유주의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의 문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미래를 기약해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얘기들이다. 복거일씨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민족주의자'이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보다 빠르고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그것이 진정 한민족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도입한다면 그 결과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의 변형은 역시 한국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한글, 한자와의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사용과 발전을 전제로 한 영어의 도입은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혀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문화는 그만큼 보편화될 수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과 미풍양속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영어라는 국제어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어 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 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함정웅.연세대정치외교학과 교수

(나)모든 분야에서 영어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하고 그에 따라 영어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에는 아예 영어를 우리 나라 제2의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그러나 영어가 우리의 공용어가 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파국으로 몰아갈지도 모를 위험한 발상이다. 영어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중략...

일반적으로 한 지역에 복수의 언어가 공존할 때 두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첫째, 언어의 세계는 동식물의 생태계와 비슷해 힘센 쪽이 약한 쪽을 지배하게 된다. 마치 한 동안 말썽이 되었던 황소개구리가 토종개구리를 잡아먹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힘이 약한 언어는 멸종 위기에 몰리게 된다. 실제로 미국 대륙의 아메리칸 인디언 언어들이 그렇게 해서 지상에서 사라졌고 또한 계속 사라져 가고 있다.

둘째, 두 언어가 공존할 때 이를 사용하는 계층이 둘로 나누어짐으로써 민족의 화합을 해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만의 하나라도 중상류의 기득권층은 영어를, 그 이하의 계층은 한국어를 선호하고 그로 인해 기득권층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점점 더 유리해지는 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계층은 더욱 불리해진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이국어로서의 영어 교육과 공용어 문제를 혼동한 나머지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우리말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할지도 모르고 민족화합을 깰지도 모를 외국어의 공용어화 같은 일은 결코 계획해서는 안될 일이다.

박병수.경희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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