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간섭은 사랑의 표현

아침에 서둘러 병원에 와보니 할머니 문병할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약국 앞 의자에 앉아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 빈 의자를 채운다.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번호판을 자주 쳐다보시는 할아버지는 약을 기다리시는 모양이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앉아 있는데 남자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두드리고 신발을 신고 의자에 올라가 발을 구르고 야단이다. 엄마가 주의를 좀 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지팡이를 딱딱 두드리면서 "이놈, 신발 신고 의자에 올라가면 안되지"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를 바라보신다.

그 순간 아이 엄마가 벌떡 일어서더니 "별걸 다 간섭이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휑하니 되돌아 서서 가버린다. 할아버지는 어이가 없으신지 "어, 그것 참"하시고는 침묵을 지키신다. 순간에 일어난 일을 지켜본 나 또한 어이가 없었다. 미워서 그러신 것도 아니고 엄마를 대신한 사랑의 가르침을 주신 것인데 그것을 받지 못하고 어린 아들의 행동을 도리어 정당화시킨 결과가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서로 의지하고 주고받으며 살기에, 사회라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아가기가 힘든다. 이 삶의 과정에서는 개인적 생활도 보장되고 공동의 질서도 존중되어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요즘 청소년들의 개성이나 활달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공동체적 의식의 점수는 후하게 줄 수가 없다. 아이들의 성숙되지 못한 의식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기성세대의 사랑이 담긴 간섭부족이 더 큰 몫을 차지할 수도 있다. 자유라는 미명하에 응석만 받아주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자립심, 인내, 도전정신은 기성세대의 간섭없이는 채워질 수 없다.

이 세상의 만물 또한 천지의 간섭없이는 생을 유지할 수 없듯이 아이들도 어른들의 진정한 사랑의 간섭 없이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원불교 경주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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