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식보면 시대.문화 알 수 있다"

인류가 매일 치르는 지상 최대의 전쟁은 바로 '먹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다른 사람보다 많이 먹고, 안정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은 모든 생명체라면 피할 길 없는 숙명이다. 어느 정도 먹거리가 해결되면 그 다음은 '음식'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21세기를 '음식의 시대'라고 한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김치 전쟁'을 시작했고, 최근 이태리와 유럽연합도 이른바 '피자 전쟁'에 돌입했다. 선전포고를 한 곳은 유럽연합. 장작으로 피자를 굽는 전통 오븐 방식을 금지하고 대신 위생과 환경보호를 위해 가스나 전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령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개고기를 둘러싸고 아시아권과 서구문화권이 벌이는 갈등도 음식을 둘러싼 큰 소용돌이의 전형이다. 이뿐 아니다. 패스트푸드의 급속한 전파와 전통 음식과의 갈등, 퓨전 푸드의 유행, 유전자조작 동식물로 만들어진 식품에 대한 거부까지 음식은 더이상 먹는 것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세종대 역사학과 주영하교수가 쓴 '음식전쟁 문화전쟁'(사계절 펴냄)은 음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행위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살핀 책이다. 저자는 8년간 김치박물관 연구원으로 활동한 문화인류학자. 음식은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여러 문화적 양상들과 음식을 관련시키면서 권력과 역사, 경제, 종교, 민족 등과 같은 문화인류학의 주제들과 음식, 특히 한국음식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살피고 있다.

그 음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서 오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배추김치를 예로 들어보자. 100년전 중국의 산동배추 품종을 들여와 재배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배추김치가 전국에 퍼졌다. 하지만 발효음식에 대한 우리만의 비밀이 배추와 결합돼 김치가 완성된 것이다. 간장도 마찬가지. 이렇듯 한국의 발효음식은 옹기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음식에 대한 풍부한 뒷이야기를 제공해준다. 또 술과 차, 음료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의미에 대한 고찰도 흥미롭다. 국가적인 통제하에 태어난 희석식 소주가 오늘날 소주의 대명사처럼 된 사연을 들려주고 구수한 숭늉이 커피로 대체된 이유를 재래식 솥의 소멸에서 찾고 있다.

그는 한국 음식이 대부분 대단히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제사상은 한국인의 즐기는 음식이 모두 망라된 축소판이다. 망자를 위해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지만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샤머니즘적 요소와 불교적, 유교적 요소의 조화는 한국의 전통 식단이 지닌 핵심구조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제까지 우리는 그릇에 담긴 음식의 맛에만 열중해왔다고 지적한다. 음식은 그저 먹고 즐기는 것일뿐 음식과 삶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왔다. 음식에 대한 사회.문화적 연구가 활기를 띤 것은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다. 이제까지 문화인류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왜 음식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해왔을까. 저자는 음식이 우리 삶에 너무나 핵심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이 음식에 관심을 보이면 '미식가'쯤으로 여기는 풍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음식과 음식물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음식을 단지 생물학적 영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음식을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

음식과 문화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문화의 틀 속에서 음식을 바라봐야 하고, 이를 통해 음식을 생산과 소비에 관통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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