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 확대경-봉화·영주 양계단지 실태

"양계를 계속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나고 그렇다고 생물(산란계)을 내다 버릴 수 도 없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전국 계란 생산량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봉화·영주지역 양계농들은 요즘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사료비도 안되는 계란값이 벌써 9개월째 계속되면서 이같은 상황이 1, 2개월 더 지속되면 양계농 중 상당수는 도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국내 계란 값을 결정하는 전국 7대 시장의 하나인 영주지역에서 최근 고시되는 계란 1개당 가격(60g 이상 특란 기준)은 59원 정도. 그러나 유통마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양계농가가 손에 쥐는 돈은 41~43원선이다. 이는 사료비 등 생산비(개당 65원선)에도 크게 못미치는 가격이다. 양계를 하면 할수록 손해본다는 계산이다.계란값은 특란을 기준으로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개당 최고 80~100원대까지 높게 형성됐으나 여름철 비수기가 시작된 지난해 7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 추석을 전후한 1주일 정도 반짝 올랐다가 줄곧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30여만 마리의 산란계를 사육하고 있는 봉화읍 도촌리의 (주)유진축산 정남철 대표. 정씨는 "정부 융자금 등 100억원 이상 투자했지만 원리금 상환도 못하는 상황에서 닭이 계란 한 개를 낳을 때마다 개당 20~25원씩 하루 500여만원 이상 손해보는 밑지는 장사를 수개월째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계란 값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같은 추세가 1~2개월 더 지속되면 2만마리 이상 사육하는 양계농들 중 자금력이 부족한 상당수는 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촌양계단지 이홍섭(39)씨는 "최근 산란율이 떨어지는 노계 1만2천여마리를 도태시키면서 육가공업자가 병아리값(1마리당 500원선)의 10%인 마리당 50원도 계산해 주지 않고 그나마 외상으로 가져갔다"며 양계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단지에서 지난 94년부터 양계를 시작, 현재 10만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삼화농장 박헌경(55) 대표도 "정부에서 시설·운영자금을 융자받아 시설을 현대화했지만 원리금과 이자 상환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계란값마저 폭락,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나 닭장을 비울 수도 없고 계속하자니 빚만 늘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 지었다.

계란값 폭락이 장기화되면서 양계농들은 생산의욕을 상실, 사료비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각종 질병 예방을 위한 방역 여력이 없어 질병 발생과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양계농가의 불만이 높다. 정부에서는 계란값 안정을 위해 육가공업체에 60억원의 노계육 구입자금을 긴급지원했으나 계란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양계농가가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또한 농림부와 축협 중앙회간에 농·축협 통폐합 문제가 꼬이면서 일선 축협에서는 정책자금을 취급하지 않기로 결의하는 바람에 양계농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축협중앙회가 최근 자체 자금으로 양계농들에게 지원해주기로 하고 융자신청을 받고 있으나 자금을 손에 쥐기까지는 앞으로 1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여 농가의 고통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양계농들은 "자금이 지원되면 일부 농가는 숨통을 틜 수 있겠으나 상당수 농가는 담보능력이 부족해 '그림의 떡'에 불과하고 특히 자금을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란 값이 상승한다는 보장이 없어 '한강에 돌 넣기'격"이라고 말했다.

대한양계조합 관계자는 "산란계 마리수가 지난해 9월 이후 전국에 5천만마리를 넘어서 현재 5천200만에 달하면서 계란이 과잉생산된 반면 소비는 둔화되었기 때문에 계란값이 폭락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계란값이 장기간 낮게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아리가 계속 늘어 산란노계의 조기도태나 육류 생산량 조절 등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계란 값은 예년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봉화·金振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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