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과거의 전통이 쌓아 온 성과들 위에 새로운 시대의 노력이 덧붙여지게 마련이다. 즉,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축적물이 동질적인 과정을 통해 연계되기도 하고, 또 그와는 반대로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충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동질성의 작용과 이질성의 효과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견고한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일정한 흐름 속에서 반복될 때 하나의 전통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 시대의 정신을 집약하는 문화라 할지라도 그것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수용하지 못한 채 흐르기를 멈춘다면, 물이 한 곳에 고이면 썩어 버리듯이, 문화도 역사의 변화 속에서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탄력성을 상실하게 되면 결국에는 하나의 독재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 문화의 참다운 가치란 전승된 문화적 유산들이 당대의 문화적 역량을 뒷받침하는 것이자,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창조적으로 구상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포용성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재의 시간이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부단히 운동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의 당대는 현재적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의 시간이라 해도 과거의 당대 역시 필연적으로 현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성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이 갖는 현대성의 기초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흐름의 과정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문화는 그 당대의 현재성을 직시하고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올바른 문화를 형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통 문화의 올바른 수용과 창조적 계승이란 과제에는 자기 시대의 현재성을 주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자세가 반드시 요구된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형식적이고 타율적인 문화 수용의 자세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문화가 당대의 사회에서 과연 얼마만큼 지속적으로 생산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지를 주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역사적인 과정을 업보쯤으로 막연하게 여기고 과거의 전통적 권위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주체적인 파악 또는 주장은 전통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와 멸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적인 자세는 전통 문화를 막연하게 수용하려는 입장이나 근거 없이 과거를 매도하려는 입장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단지 과거의 유산이기에 무조건 집착하여 수용하려거나 또는 단지 과거의 잔재이기에 무조건 폐기 처분하려고 하는 입장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문화 창달의 길이 무엇인지를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유로운 정신들의 출현을 밑바탕에서 준비할 여력이 없는 전통 문화라면, 결국 권위적인 순종과 집단주의만 강요함으로써, 자기의 주체적인 주장을 상실한 문화의 노예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맹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반성하고 구하라'고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격언들은 단지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에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이나 사회 혹은 문화라 할지라도, 자기 정화·자기 반성·자기개혁을 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참다운 생명력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썩는 물이 되는 것이다. 전통 문화의 수용이 현대적으로 의미가 있다거나 없다는 판단 또한 철저하게 자기 반성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정신에 맞는 옥석을 골라 내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우리들 문화가 지니고 있는 사실성으로부터 전통 문화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대개의 전통 문화는 오랜 세월 동안 변화 없이 이어져 오면서, 그 문화에 대한 기득권을 가진 계층이 타성에 젖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형식화·외식화·타율화되기에 이른다. 만약 하나의 문화가 이렇게 과거의 습관에만 안주하여 더 이상 시대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그 문화는 급속하게 정체되고 만다. 더군다나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까지도 기존의 획일적이고 통합적인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수많은 다원적 가치들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 전통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좀더 시대 정신과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탄력성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문화적 가치란, 한번 결정되면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와 문화적인 환경을 통해 새롭게 조명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적 역량을 주체적으로 반성하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좀더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세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창조적 문화가 있는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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