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천년 교실 새바람 분다 (3)영남공고 '즐거운 학교 만들기'

전국의 학교가 '교실붕괴'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지난해, 대구 영남공고에서는 변화를 향한 작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실업계 고교, 그것도 중간 수준에 머무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할 것도 뚜렷이 없었지만 교사와 학생들의 열기는 내내 식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다른 학교들이 여전히 '교실붕괴'의 충격을 떨치지 못하고 있지만 영남공고의 '즐거운 학교' 만들기는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학급회의 문화다. 매주 월요일 1교시는 학급활동 시간. 오전9시가 되면 모든 교실은 조용해진다. TV를 통해 다음 주 생활목표와 관련된 영상물이 방영되기 때문.

영상물에 나오는 주인공은 학생들이다. 주 생활목표는 1주일 전 정해진다.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으로 깨끗한 학교환경, 바른 몸차림, 인사 잘하기 등이다. 방송부원들은 1주일 동안 학교 곳곳을 다니며 이와 관련된 학생들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영상에 담는다. 이를 편집하고 나레이션을 담아 월요일마다 방영하는 것이다.

아는 얼굴이 나왔다고 키득거리면서도 학생들의 눈길은 진지하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비디오로 자세히 보니 우리 생활모습이 저랬나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주 생활목표는 기본 생활습관 지키기 위주로 정해져왔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몇주일씩 연장되기도 했다.

정무영 윤리부장은 "학생들 가운데 결손가정 등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경우가 28.5%나 돼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면서 "기본 생활습관 지키기에 가장 역점을 두고 한가지 주제로 7주씩 끌어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상물을 보고 난 뒤 학급회의가 이루어진다. 회의진행은 반장 위주지만 학기가 진행될수록 일반 학생들이 진행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형식도 딱딱한 회의 일변도가 아니라 다양하다. 분임토의를 해서 학급의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모의재판이나 기자회견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역할을 갈라 연극을 하거나 기타를 치면서 노래부르는 학급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쭈뼛거리던 학생들도 회의참가에 열의를 보였다. 의사표현도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결과는 1, 2학년 1천700명을 대상으로 6개월동안 진행된 '나의 주장 발표 대회'에서 나타났다. 유창하진 못하지만 자신의 생활과 문제점, 가족 이야기 등이 솔직담백하게 발표되면서 교실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때도 많았다.영남공고의 또다른 특징은 다양한 현장 체험학습. 지난 한 해 동안 열린 체험학습만 해도 21개 종류 240회로 학생 1인당 평균 4.2회 참가한 셈이다. 결석이 잦고 가출까지 해 중도탈락 위기에 놓였던 화공과 서모군은 무려 9개 종목에 참가하면서 모범생으로 바뀌기도 했다.

대표적인 체험학습은 아버지 직장체험, 3대 가정.독자 가정 상호체험, 장애체험 등. 아버지 직장체험은 아버지의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71명이 참가, 아버지와 함께 출근해 적어도 오후 3시가 넘을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의 직장 환경과 작업 내용을 살펴보고 일도 도왔다. 서먹한 부자관계를 다지기에는 더없이 좋은 행사였다.

3대 가정과 독자 가정의 학생들이 집을 오가며 하룻밤씩 보내는 체험도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독자 가정 학생들의 경우 조부모가 있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가정생활과 예절 면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고 3대 가정 학생들은 가족의 소중함과 자기 가정의 장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

많은 체험학습 가운데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행사는 장애체험이었다. 지난해 7월 12일 영남공고 강당.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면서 한국 장애인 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흥렬씨의 강연이 열렸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소외당한 삶을 고통스레 이어오면서도 정신은 누구보다 맑고 건강하게 살아온 이씨의 강연은 불만과 반항의식에 빠지기 쉬운 학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그가 발가락으로 쓴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도 굴복당하지 말라"는 글을 사회자가 읽어주자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립박수로 감동을 나타냈다.

이어진 행사는 장애인 캠프 자원봉사.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3일 동안 자유재활원생들이 가진 캠프에 참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경험이 없는 고교생 32명이 시설도 불편한 야외에서 장애인을 하루 종일 맡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모험이었다. 밥을 먹여주고, 몸을 씻겨주고,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도와주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일이 3일간 계속됐다.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라고 여기던 학교측이 정작 놀란 것은 캠프가 끝난 며칠 뒤. 봉사활동에 참가했던 학생들 가운데 10여명이 스스로 자유재활원을 방문해 자원봉사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른 친구들까지 데려와 봉사활동에 합류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이밖에도 청학동, 향교, 하회마을, 갯벌마을 등을 찾아다니며 몸으로 배우는 체험학습이 계속됐다. 자원자 위주로 진행됐지만 불량끼가 다분하던 학생들도 자의반 타의반 참가하면서 학교 분위기까지 크게 달라졌다.

한영학 교장은 "실업계고의 학생지도는 중도탈락 방지에도 벅찰만큼 일반계 고교에 비해 몇 배 힘든다"면서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자율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학생지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남공고의 출석률은 99.37%로 전년도보다 높아진 반면 학생들의 비행건수는 전년도 12건에서 3건으로 줄어들었고 퇴학생도 32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아직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양적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내실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진단이다. 올해도 학급회의를 비롯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줄줄이 추진된다. 지난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각급 학교의 눈길을 모았던 영남공고의 '즐거운 학교' 만들기는 올해 더욱 내실이 기해지면서 성과도 두드러질 전망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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