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 혁명가의 불꽃같은 삶·사상

레닌과 모택동, 카스트로, 체 게바라…. 20세기의 대표적 혁명가를 꼽으라면 이들이 단연 첫 손에 든다. 특히 거대한 중국을 공산화시킨 마오쩌뚱(毛澤東)과 남미 혁명의 뒤안길에서 불꽃같은 투쟁의 삶을 살다간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숙지지 않을만큼 현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들 두 혁명가들의 삶과 사상을 추적한 책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게바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기작가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김미선 옮김)과 중국 모택동사상연구소 삐지엔헝(畢劍橫)의 '모택동 사상과 중국철학'(예문서원·이철승 옮김)이 그 것.

아르헨티나 태생인 게바라(1928-1967)는 20세기 세계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대표적인 혁명가 중 한사람이다. 그는 가난과 억압에 대항해 혁명을 무기로 세계의 모순에 맞서 싸우다 볼리비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의사이자 혁명가로, 탁월한 게릴라 전술가, 외교관, 저술가로 활약했다.

지난 1995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이 평전은 게바라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한 일대기. 67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다 게바라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일괄해서 엮어 놓은 결정판이다.

검은 베레모와 긴 머리칼, 구겨진 군복 등이 인상적인 그는 한마디로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1953년 과테말라의 쿠데타를 지켜본 후 미국이 남미 각국에서 진보적인 정부의 출현을 반대한다는 확신을 가졌던 그는 멕시코에서 만난 카스트로와 함께 59년 쿠바 혁명을 완성했다. 쿠바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65년 쿠바 2인자의 자리를 버리고 내전중이던 콩고로 훌쩍 떠난 그는 1년뒤 볼리비아에 숨어들어 게릴라지도자로 맹활약하며 전남미에 혁명의 불씨를 당기려 했으나 미국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이같은 격정과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간 그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모택동 사상과 중국철학'은 중국인의 사유구조에 깊이 각인돼 있는 모택동 사상을 살펴본 연구서다. 최근 20년간 중국 전체가 자본주의의 거센 파도에 휩쓸리면서 다시 '모택동을 연구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12억 중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마오이즘'은 오늘의 중국이 갖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사해주는 프리즘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오이즘을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전통철학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 현대 중국철학의 주류인 모택동 사상의 이론적 근거는 두가지로 간주한다. 먼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 즉 유물론적 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직접적 계승이자 창조적 발전이다. 두번째 근거는 중국의 전통 철학에 대한 비판적 계승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중국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활용해 중국철학사를 연구하는데 큰 흥미를 느꼈다고 전해진다. 2만5천리 대장정 도중 전투가 잦아지고 환경이 악화되자 그는 적지 않은 의복과 물품을 내버리면서도 중요한 서적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번역본 몇 권은 항상 지니고 다닐만큼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연구 자세는 매우 엄숙했다.

저자는 모택동이 중국 고대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을 비판적으로 계승, 유물론적 변증법의 세계관으로 승화시켰는지 살피는 한편 모택동 철학이 어떻게 중국적 특색이 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답하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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